[한라일보] 한 미술잡지에 젊은 지역작가를 다루는 릴레이 평론을 게재했다. 충청과 제주지역에서 청년작가를 선정해 평론을 해야 했는데, 충청작가 찾기보다 어려운 건 제주작가 찾기였다. 너무나 많은 데이터가 있는 까닭에 그 데이터 안에서 단 한 명을 어떤 기준과 범위로 선택해야 몰라 길을 잃었다. 제주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지역은 원주민, 이주민, 단기 장기 여행자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지구 위의 작은 땅일 뿐이다. 제주에서 활동하며 제주작가들의 출신의 다양성을 발견하면 더 심도 깊은 문제의식을 제기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거주기간? 탄생지? 부모님의 탄생지? 주민등록상의 현주소지? 교육을 받은 곳? 작품 주제? 활동하는 곳? 범위는 끝도 없이 좁힐 수도 있고, 한도 없이 넓힐 수도 있다. 자기만의 작업세계를 확립하고 자신만의 시점을 작품으로 공유하는 훌륭한 작가들이 수도 없이 떠오르는 게 문제였다. 작업에서 제주를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면 일단은 제주작가인 것으로 간주하기로 개인적 기준을 세우고 나서야 겨우 작업은 진전을 보일 수 있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선정한 작가는 제주 출신의 조부모가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하게 된,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3세인 현우민이었다. 국적은 한국이고, 제주를 오가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시 '작은 빛'에서 작가는 '잔상여행(Afterimage Trip, 2024)'이라는 신작을 소개했다. 1988년까지 한국에서 각각 3년, 12년, 28년을 보낸 세 사람, 재일한국인인인 작가와 그의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해, 경제적·정치적으로 큰 변화가 있던 한국의 한 시절을 현재의 풍경과 중첩시키면서 '한때 있었던 것'과 지금의 시간적·공간적 거리를 표현한다. 조부모님에서 시작해 부모님으로 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킨 듯한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한다. 한국인다움과 일본인다움의 실체가 없듯이 재일한국인다움의 실체 또한 알 수 없다, 그런데 정작 재일한국인이자 조선인으로서의 자신을 일치시키지 못하는 자신을 찾기 위해, 부모님을 포함해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개인의 입장과 거리감을 얘기해보려 했다고 전한다. 부모님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다시 만나고, 자료를 통해 배운 역사를 부모님의 목소리로 경험하는 일은 입체적인 상상력을 작가에게도, 관객에게도 제공한다. 결국 제주작가라는 관념은 한국인, 일본인, 재일한국인의 실체가 없는 것과 똑같이 존재하지 않고 극복해야 할 한낱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지구 위 하나의 영역 안에서 태어나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하나의 인간이자 예술가일 뿐이다. 과거의 거대한 신화를 극복하고 저항하는 방법으로 지금 이 순간도 개인의 신화를 만들어 나가는 하나하나의 고유한 존재일 뿐이다. 결국 제주작가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나연 전 제주도립미술관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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