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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의 건강&생활] 조금 더 너그러운, 살만한 세상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입력 : 2024. 10.16. 00:00:00
[한라일보] 병원에서 종종 의사보다는 자식이나 돌봐주는 사람 역할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음식을 전혀 씹지 못하시는 환자 분이 틀니를 새로 맞추셔야 하는데 치과 예약 안내서가 내가 읽어도 너무 어렵게 쓰여 있어 예약을 잡지도, 치과에 찾아가지도 못하시고 계시기에 치과에 전화를 대신 해드리고 모셔다 드린 적이 있다. 또, 내가 근무하는 병원은 교통이 무척 복잡한 곳에 위치해 있는데, 시골에서 오시는 분들은 진료 한 번 받으러 오기가 이만 저만 큰 일이 아니다. 이런 분들께는 화상 진료가 무척 도움이 되는데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다룰 줄 몰라 화상 진료를 해보지 못한 분들도 계시다. 그러면 종종 가지고 계신 휴대폰을 꺼내 보시라 해서 어떻게 영상 통화를 하는지 알려 드리곤 하는데, 보통 이런 일들이 진료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도와드리곤 하는 이유는 이런 의료 외적인 부분이 내가 처방하는 알량한 몇 알의 약보다 삶에 훨씬 중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로 살면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 어려움을 느끼는 것 또한 이런 부분이다. 마음 건강은 각자 타고난 부분, 생물학적으로 조절되는 부분도 있지만 각자가 처한 현실에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고난에 처해 있는 사람이 항우울제를 먹는다고 그 상황이 변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정신과 치료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전화 몇 통, 서류 작성 해드리기 같은 간단한 도움으로 해결 되는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진짜 돌봄은 우리가 사는 하루 하루에, 모든 곳에 필요한데 의사로서 내가 환자들한테 줄 수 있는 도움은 그에 비하면 여전히 작기만 하다. 그럼 진짜 돌봄은 어디서 와야 할까. 모든 것은 가정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개인의 책임일까?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아프다면? 도리어 돌봄이 필요한 가족이 있어 나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면? 실제로, 노인들이라고 해서 항상 돌봄의 객체인 것은 아니고 내가 만나는 어르신 환자들을 보아 대부분의 누군가 -자식이나 손주, 배우자, 때로는 형제나 친구- 를 돌보며 산다.

돌봄의 책임이 어디에 있고 돌봄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는 사회적인 인간과 삶의 본질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또한 몹시 현실적인 문제라 명쾌하고 쉬운 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우리가 서로에게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이였던 것처럼 누구나 늙어간다. 아이를 보호하고 돌보는 일이 당연하듯 나이가 들어 도움이 필요해진 이를 돌보는 것도 당연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어린 아이, 젊은이, 노인은 세 가지 다른 종류의 인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다. 한 사람이 태어나 돌봄을 받고 돌봄을 주며 온전한 삶을 살다 갈 수 있는,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이소영 하버드의대 매스제너럴브리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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