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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경의 건강&생활] 타인의 고통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입력 : 2024. 10.23. 02:30:00
[한라일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답답하고 우울한 뉴스들로 무겁던 마음이 잠시 환해진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 작가가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해 있는 것과 달리, 작가 본인은 이 상을 받은 의미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뿐 아니라 삶의 태도에서 '무릇 예술가란 시대의 맑은 거울이자 떨리는 나침반이구나' 싶어진다.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는 한 작가가 4월 제주와 5월 광주에서 참혹한 폭력에 목숨을 잃거나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의 고통에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쓰인 작품이라 느껴진다. 그는 인간이 다른 인간과 생명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숭고할 수 있는지, 무심한 듯한 자연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의 모순과 대비를 나지막하면서도 강렬한 시적 언어로 이야기한다. 읽다 보면, 입에 담을 수 없던 고통과 슬픔이 뼈에 각인되고 꿈에 봉인돼 끊임없이 현재화되고 있는 인물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던 선량하고 순수한 인물을 통해, 죽은 이를 가슴에 품은 채 작별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을 통해 우리도 그 고통의 바다로 흘러가게 된다. 몸이 뒤틀리듯 고통스럽고 숨이 턱 막혀 더 이상 읽지 못하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하게 된다. 거대한 고통의 물살이 온몸을 덮쳐 쓸려가 버린다. 고요하게 서늘하고 뜨거워진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 피 흘리는 연약한 심장에서 흘러나온 물이 나를 넘고 두려움의 강을 지나 깊고 큰 하나의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타자의 고통이 바늘처럼 찔러와도 아무렇지 않은 무쇠 심장이 아니라 찔려서 같이 아프고 피 흘리는 심장이 우리를 구원한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양철 허수아비의 꿈은 이런 말랑한 심장을 갖는 것이었다. 인간의 생명은 삶의 에너지와 죽음의 에너지가 어우러져 돌아가는 무엇이고, 삶은 고통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기에, 죽음을 기억하고 고통을 안은 채 살아갈 때 우리는 온전하고 생생할 수 있다.

작가가 인간의 어두운 폭력성과 세상의 아름다움에 천착해 계속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은 그가 영혼의 존재를 믿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모든 훌륭한 작가가 그렇듯 그는 이 시대정신을 잘 감지해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그래서 노벨 문학상이 그에게로 왔으리라. 우리나라 작가가 큰 상을 받은 기쁨을 누리되 독자인 우리도 여기서 한발 나아가 이 상이 그에게 온 의미를 잘 헤아려 봐야겠다.

이 기쁜 뉴스로 한 작가의 책이 모두 팔리고 모처럼 출판사와 인쇄소가 바쁘게 돌아간다고 한다. 어른도 아이도 스마트폰 중독으로 감각의 홍수와 빨리의 조급함에 정신작용의 균형이 깨지고 병들어가는 요즘, 좋은 책을 읽으며 사색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다.

책 읽기 참 좋은 계절이다.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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