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중턱에 들어선 지난 5일 '2024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11차 행사가 진행됐다. 이날 참가자들이 사려니숲 주차장에서 출발해 민오름 정상과 습지를 거쳐 목장길을 걸어가고 있다. 오승국 시인 [한라일보] 지나간 한 해와 마무리할 일들을 생각하는 사색의 계절, 가을의 중심시간이 흘러가는 시월이다. 분명 시월의 시간은 흐르고 있고, 숲은 11월의 아름다운 단풍을 예고한 채 여전히 진초록으로 버티고 있다. 숲의 나무들은 모진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그들만의 일생의 루틴을 정직하게 수행한다. 작별을 예감하며 떨어지는 잎새가 애잔하다. 우리들의 삶도 결국은 죽음의 과정인 것처럼 신록의 옷을 벗고 가볍게 버티고 설 숲의 겨울은 늘 장엄하다. 간단한 준비체조를 마치고 민오름을 향해 숲으로 들어섰다. 서어, 졸참, 산딸, 때죽, 단풍, 쥐똥나무 등 상록낙엽수가 즐비하고, 머금었던 씨앗과 잎새가 머리위로 떨어진다. 힘들게 오름 등성이를 오르다 보니 휘파람새의 독특한 소리가 우리의 걸음을 응원한다. 여린 억새가 너울너울 춤추는 민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는 푸르른 목장과 제주동부의 오름들은 여전히 목가적 여유로움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까마귀베개 한라돌쩌귀 땅콩버섯 민오름 둘레길을 걷다보니 삼다수목장이 광활한 가을하늘 아래 푸르게 푸르게 우리를 부른다. 길가에는 물봉선, 짚신나물, 엉겅퀴, 참취, 파대가리 등 야생화가 소담하게 피어 있다. 이 지역은 애초부터 오래된 목장 지대다. '도리송당'이란 말은 최고 고지의 마을인 교래리와 송당리를 일컫는다. 토질이 척박해 농사가 안 되므로 목축에 전념할 수 밖에 없었던 어려웠던 시절에 나온 말이다. 오죽했으면 어린애들이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교래(도리)나 송당에 보낸다고 했을까. 말똥버섯 개승마 산초 진득찰 오승국 시인 족은지그리오름까지 찍고 바농오름으로 향한다. 바농은 바늘의 제주어다. 두릅, 상동, 청미래 등 가시나무가 많았나 보다. 삼나무숲을 치고 올라 정상에 서니 가막살 빨간 열매가 지천에 널려 있다. 바농오름 서쪽 기슭에는 4·3 당시 조천지역 주민들이 피신해 움막을 지었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다시 만난 친구여, 우리가 걸었던 대지에서 사라져간 고운 사람들을 위해 다시한번 진혼곡을 불러주오. 그리고 여름날의 피로를 위로해 준 시월의 바람을 위해 건배. 오승국 시인 <제주작가회의 회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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