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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04] 3부 오름-(64)얕은 물과 골짜기가 있는 널개오름
고대인들이 널개오름 이름에 새겨넣은 뜻은?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입력 : 2024. 11.19. 03:00:00
'널'은 호수 혹은 얕은 물을
지시하는 북방어에서 기원


[한라일보] 북제주군 한경면 판포리에 있다. 표고 93.2m, 자체 높이 58m다. 1530년 동국여지승람 등 고전에 판을포악(板乙浦岳), 판포악(板浦岳), 지역에서는 널개오름으로 부른다. 카카오맵에는 판포오름(널개오름)으로, 네이버지도에는 널개오름으로 표기했다. 그러므로 이 오름은 판포악, 판을포악, 널개오름, 간혹 나타나는 판포산(板浦山) 등 4개 정도가 검색된다. 판을포악(板乙浦岳)은 널개의 널을 판(板)으로, 널개의 개를 포(浦)로 차자한 것이므로 널개오름의 한자 차용 표기라 할 수 있다.

널개오름 분화구의 골짜기, 용천수가 길이 120m 정도의 기다란 못을 이룬다. 김찬수

판포오름 이름유래라면서 널개마을 가까이에 있어서 예전에는 널개오름이라 부르다가 우리말의 뜻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판포악으로도 쓰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요약하자면 널개 가까이에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널개란 넓은 개를 지시하므로 넓은 개 가까이에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라고 한다. 이런 설명은 일반에서 그대로 따라 하면서 널리 유포되었다.

널개가 과연 넓은 개인가? 넓은 개란 과연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결론부터 표현하자면 널개란 '널+개'의 구조로서 '얕은 물과 골짜기가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여기 '널'은 원래 북방어 '노루'에서 온 말이다. 이 말은 원래 호수를 지시하는 말로써 퉁구스어로 'noor'라 발음한다. 현대 몽골어에서는 'nuur'라 한다. 그러나 특별히 호수보다 얕은 물을 지칭할 때는 'nuur-' 혹은 'nor-'로 짧게 발음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아주 유사한 예는 성널오름에서 볼 수 있다. 본 기획 92회와 93회를 참조하실 수 있다. 성널오름은 샘과 얕은 물이 있는 오름의 뜻이다.





널개오름에서 솟아나는 물,
지질학책에도 기록되지 않아


'널+개'의 '개'는 골짜기를 의미한다. 골짜기가 있는 오름은 고대어로 '갈올(골올)'이다. '갈올'의 '갈'에서 'ㄹ'이 탈락하여 '가올'이 되고, '올'은 '오름'으로 바뀌면서 '가올', '개올', '개오름' 등으로 된다. 이미 설명한 '가세오름', '거슨세미오름', '병곶오름', '가오리오름(개월오름)'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널개오름 입구의 호강물, 이 도로의 오른쪽에는 소로곳물이 있다. 김찬수

널개오름이란 '넓은 개'가 아니다. 얕은 물과 골짜기가 있는 오름이란 뜻이다. 골짜기란 계곡처럼 파여 있는 지형만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물이 흐르는 특성을 가진 지형을 지칭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오름엔 못이 몇 군데 있다. 우선 정상을 가는 탐방로 입구에서 좀 더 서쪽으로 가면 길가에 길이 100m, 너비 10~30m 정도의 못이 있다. 판포리 2069번지로서 소로곳물이라고 부른다. 이 물 이름도 작은 호수라는 뜻이다. 물은 주로 봉천수일 것으로 짐작되지만 연중 물이 고이고 부분적으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적은 양이나마 스며 나오는 물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못을 관통하는 도로의 북서측 역시 이와 연결된 못이다. 이물을 호강물이라고 한다. 여기서 북쪽으로 200m 정도 거리 판포리 982번지엔 하니새미못이라는 못이 있다. 물이 솟아나는 샘이다. 여기서 좀 더 올라가면 물이 또 있다. 이 외에도 자연 못이 더 있다. 특히 판포리 926-1번지는 길이 120m 정도의 기다란 물을 만날 수 있다. 이 물은 못이라기보다 개울이다. 이 일원 어느 곳에서 샘이 솟아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한 이 주변에는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걸쳐 2개의 저수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2000년에 들어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모두 3개가 있는 셈이다. 그중 가장 오름 가까이에 있는 것이 웃저수지다. 바로 이 개울 같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저수한다. 판포리 883번지를 포함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다시 배수로를 따라 판포리 849번지 알저수지로 흐른다.

널개오름엔 물이 흐르는 골짜기가 있다. 물이 고이는 샘들도 있다. 저수지를 제외하더라도 물이 많은 오름이다. 물론 이런 사실은 어떤 지질학 지리학책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탐방객들도 무심히 넘어간다. 그러나 고대인들은 이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름에 널개오름이라고 박아 넣은 것 아닌가.





판포리는 널개오름 가까이 있는
마을, 엄포는 용천수가 있는 개


판포리 옛 이름은 널개라고 한다. 옛 기록에 판포(板浦), 판포리(板浦里), 판을포면(板乙浦面), 판을포리(板乙浦里)라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름 이름을 마을 이름에서 딴 것이라 단정하면 곤란하다. 오름이 있고 마을 있는 것이지 마을이 먼저일 수는 없는 것이다.

1872년 제주삼읍전도에 엄포(嚴浦), 1910년 조선지지자료에 엄수포(嚴水浦)가 나온다. 이것은 엄숫개 혹은 엄수를 표기한 것이다. 이 개에는 엄수개물 혹은 올래물이라는 용천수가 있다. 엄수란 '엄+수'의 구조다. 고대어 특히 고구려어로 물 특히 샘(泉)을 '어을'이라고 한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천정구현일운어을매곶(泉井口縣一云於乙買串)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즉, 천정(泉井)은 어을(於乙)이라는 것이다. 어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 엄(嚴)이다. 엄수란 여기에 수(水)가 덧붙은 것이다. 올래물 역시 '올래+물'의 구조로서 올래는 '어을(於乙)'의 변음이다. 어을은 '얼', '올', '어리', '오리'로도 축약된다. 올래물은 '물+물'의 이중첩어 구조다.

널개오름은 얕은 물과 골짜기가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판포리는 널개오름 가까이 있는 마을, 엄포는 용천수가 있는 개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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