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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95)사랑-곽재구
오은지 기자 ejoh@ihalla.com
입력 : 2024. 12.10. 02:00:00
사랑-곽재구




[한라일보] 풀을 따라 강둑을 걸었다

바람이 불어와 풀들을 보듬었다

소주 두 홉을 마신 사람이 풀냄새 두 말을 마셨다

풀은 주량이 어떻게 되나

술 먹지 않은 무싯날 태풍이 불어왔다

미친바람이 풀의 몸을 쥐어뜯었다

풀은 온몸이 술이며 노래며 춤이며 심장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풀은 바람을 보듬고 구천 멀리 날아갔다

풀과 함께 날아가던 새들이 한 골짜기에 내려앉았고

조용해진 풀밭에 새들이 알을 낳았고

바람에 날려온 꽃씨들이 풀 틈 사이 꽃을 피웠고

알을 나온 아기 새들이 톡톡 꽃잎을 쪼았고

풀밭에서 새로운 음악의 기원이 시작되었다

삽화=배수연



이 시에서 풀어내야 할 것은 많지 않지만 사랑을 이야기하련다는 강한 의지를 헤쳐볼 수 있다. 소주 두 홉을 마신 화자가 풀을 따라 걷던 강둑에 태풍이 왔다. 다행히 무싯날이고 술을 먹을 수 없는 날이고 풀을 관찰할 수 있는 상태여서 풀에 대해 생각이 잘 미치는 날이다. 그 생각을 따라 시인은 풀을 노래할 만큼 노래했다. 술은 술 먹는 자요, 노래는 노래하는 자요, 춤은 춤추는 자요, 심장은 인간 전부에 해당한다. 태풍에 쥐어뜯긴 그 풀이 그 바람을 보듬고 구천까지 간 것이다. 용케 풀과 함께 날아가던 새까지 죽은 골짜기에 따라 와 내려앉았으니 인간의 정신과 시적 갱신에 의해 사랑이 성립된 것이고 부활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이후는 시가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언뜻 새는 전에 낳던 대로 아기 새를 낳고 꽃씨는 피우던 대로 꽃을 피우는 현실의 낯익은 풀밭을 재현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자칫 새로움이라 하고 새로움 말고 다른 것을 볼 수 있고 새로움 말고 새로움이 떠올리는 가치만 부여잡을 수 있다. 모든 시가 찾아가는 곳이 미래는 아니지만 시에는 은유의 순간이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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