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해피밀-배수연 [한라일보] 돌아누운 그의 등에 고인 물로 세수를 하면 밤새 얼굴에 썩은 내가 났다 보라색 암죽을 쑤어 먹고 밖을 나서면 일없는 거리마다 골이 깊은 바람들 종일 따귀나 날리고, 버스 창을 열자 날아든 쪽지에는 '크리스마스 신 메뉴 속 숨겨진 다이아몬드 반지의 행운을 찾아라!' 이 저녁 당신이 태어난 날 먹는 해피밀, 해피밀…… 진창에서 태어나 다이아몬드 눈을 반짝였던 겨울의 그 헛간을 생각하며 우리는 오르간 연주곡 사이로 단 하나의 별로 만든 종소리를 들었다 그는 촛대에 올린 불꽃으로 나와 의중을 교환한 뒤, 쪽지를 태우고 심지를 꼭 집어 불을 껐다 내가 손쓰기도 전에, 죄와 재를 섞었다 삽화=배수연 우리는 잘 모르고 크리스마스와 예수를 교환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시인은 예수를 살리기 위해 크리스마스를 죽이는 방식으로 '돌아누운' 예수를 등장시킨 것인지 모른다. 그의 '등에 고인 물'은 그가 진 짐이며, 거기서는 발병한 화자에게서 전이된 썩은 내가 난다. 그 물로 세수하는 것은 일종의 그와 만나는 수단이라 하겠고, 최소한의 행위로써 죄를 씻는 세례의 낯익은 기율이다. 그리고 거리로 나서면 '크리스마스 신 메뉴 속 숨겨진 다이아몬드 반지의 행운을 찾아라!'라는 새로운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해피밀은 예수의 살과 피로 만들었다는 설교처럼 들리지 않는가. 결국 예수가 겨울 헛간에서 태어난 날 먹는 해피밀은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훼손하려는 음모를 가지고 있으며, 묽은 암죽과 함께 예수가 없는 크리스마스의 결여를 표출하는데 쓰이고 있다. 그의 돌아누운 아픔은 죽음의 상징적 상태이지만, 그가 촛대에 올린 불은 타자의 죄와 자기 자신의 재를 섞어서 절묘하게 구원을 이루어 낸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나'와 의중을 교환하는 방식의 인격적인 향유이며, 그 거듭남의 시간은 우리에게 손쓸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기로 결정한 신(그)의 한 수이다. <시인>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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