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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좌읍 하도리 출생… 10대부터 자연스럽게 물질 배워 “물질하는 게 재밌었다”… 부산·전남 오가며 출향물질 외항선 타는 남편과 부산 이주해서도 해녀 생활 지속 “물질하며 귀가 어두워… 잡념 사라지고 마음은 편해” ![]() 김정생 씨가 부산 영도해녀문화전시관에서 자신의 해녀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태봉기자 l 처음부터 물질이 좋았다 [한라일보] "상군(해녀) 하고 막 잠수할 때는 고생하지만 잡는 재미가 있다 아이가. 전복도 올라오고, 소라도 올라오고. 어떤 때는 재수 좋아서 5~6개씩 잡고 오면 제일 좋아." 부산 영도구 바다에서 해녀생활을 하는 김정생(80) 씨는 어린 시절부터 물질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제주와 부산, 전라도 등을 오가며 65년째 물질을 해온 그는 여전히 바다가 "시원한고 편안한 장소"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김 씨는 1947년 북제주군 구좌읍 하도(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서 태어났다. 엄마와 세 명의 언니 모두가 해녀였다. 물질하는 엄마를 따라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고, 조개를 캐며 김씨도 자연스레 해녀가 됐다. 처음부터 물질이 좋았다는 김 씨는 일찍이 해녀로서 바다에 나섰다. 그가 기억하는 첫 물질은 초등학교 졸업 후 15~16살에 시작됐다. 김 씨가 19살이 됐을 무렵에는 전라도 모도(진도군 의신면), 청산도(완도군 청산면), 진도(진도군) 등을 다니며 출향물질을 시작했다. 이후 깊은 바다도 두려워 하지 않으며 긴 시간 상군해녀로 물질했다. 첫 물질의 기억은 생생하다. "모래밭에서 시작했는데, 돌들이 조금씩 있으면 (거기 붙은) 청각 캐고, 파래 뜨고. 그러다가 문어 보이면 막 신나서 잡고. 그땐 수경(물안경)도 왕눈(렌즈가 1개인 물안경)이었고, 잠수복도 없었어. 소중이만 입고 물질했지. 잠수복은 1975년쯤에 나왔을 거라." ![]() 김정생 씨가 물질하는 부산 영도구 앞바다. 장태봉기자 l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이주 김 씨는 21살에 제주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제주에 머문 기간은 2~3년 남짓이었다. 결혼 직후인 1960년대 후반, 남편이 해외를 오가는 유조선의 선원으로 일하면서 가족은 부산 영도로 터전을 옮겼다. 연고 없는 타지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김 씨 가족은 남의 집 방 한 칸을 빌려 셋방살이를 시작했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선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부족했다. 제주에서부터 물질을 해 온 그였기에 봉래동(부산 영도구) 해녀회의 문을 두드렸다. 외지인이 물질을 하기 위해선 해녀회에 가입해야 했다. 하지만 해녀회의 문턱은 높았고, 김씨는 부산 이주 후 약 1년여간 물질을 하지 못했다. "해녀회 회의할 때 가서 사정하고 부탁했지. 1년 만에 가입 승인이 돼서 회비 2만원을 내고 들어가서 물질을 시작했어." 김 씨는 이후 3년여 만에 집을 구하면서 셋방살이를 끝냈다. 봉래동에서 청학동으로 이사하며 해녀회도 새로 가입했다. 김 씨는 1970년대 초중반 당시 "청학동에 제주도 해녀가 억수로 많았다"며 "전체 해녀는 한 100명 정도였고, 지금은 15명도 안 된다"고 했다. ![]() l 가족을 위해 바다로 제주와 부산은 같은 바다였지만 물질하며 만나는 풍경은 달랐다. "제주도는 물이 깨끗하고 수심이 깊어. 근데 여기(부산) 오니까 물이 좀 어두워. 제주도만큼 깊지도 않고. 제주에는 멍게랑 홍합이 없는데, 부산에는 있어. 뭐 소라나 전복, 문어는 다 있어도." 김 씨는 물질을 할수록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물질로 번 돈은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됐다. 외항선을 타던 남편이 1년에 한 번 휴가를 나왔지만 김 씨는 바다로 향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물질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바다를 매일 보며 익숙해졌지만 바닷속 폐그물은 두려웠다. 김 씨는 "물질하다가 위험한 적은 별로 없는데 그물이 무서웠지. 고기잡이 그물 같은 거에 걸리면 사람이 죽거든. 그물에 걸려서 죽은 사람도 몇 사람 있어. 그게 제일 무섭지. 다른 건 없어"라고 회상했다. 오랜 해녀 생활은 몸에도 흔적을 남겼다. 그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병원에 가니까 해녀인 걸 딱 알더라고. 압력으로 귀에 살이 막 삐져나와서 귓구멍을 막았어. 뭐 고칠 수도 없대. 나이 든 해녀들이 다 귀가 어둡잖아. 그러니까 해녀들끼리 식당에서 말하면 손님들이 싸우는 줄 알아(웃음)." ![]() ![]()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바다 어장. 제주학연구센터제공 l 바다, 애잔함과 편안함 물질에 나간 김 씨를 대신해 이웃 여성들이 그의 자녀들을 길렀다. "아이들한테 가장 미안해. 어렸을 때 시간을 못 보내서. 막내는 아기 돌보는 사람이 자기 엄마인 줄 알았어. 그만큼 부모 얼굴을 못 보고 커서… 나는 매일 바다에 있으니까 물놀이도 같이 못 갔어. 그런 게 가장 미안하지." 한평생 함께 해온 바다를 떠올리면서 그는 여전히 바다가 좋다고 했다. 김 씨는 "아이고, 물에 가면 좋아. 시원하고 편안해. 집에만 있으면 갑갑한데 바다에만 오면 속이 삭 털어져(후련해져). 잡념도 사라지고 힘든지도 몰라. 중독 들었어. 바다 중독."이라고 웃어 보였다. 특별취재팀=양유리 기자· 장태봉 기자(사진·영상 촬영)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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