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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비가 와서 잠도 안 와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20. 08.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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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 포스터.

비가 너무 많이 온다. 많아도 너무 많이 와서 잠을 못 이룰 지경이다. 뉴스에선 이번 장마가 사상 최장 기간 한반도에 비를 뿌리는 물난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몸을 다치고 비에 목숨을 빼앗겼다. 연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의 출발은 무척 우울했다. 전염병의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불안과 초조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무서운 비가 이 여름을 호되게 때리고 있다. 2020년은 이다지도 힘들다. 이 시기를 견뎌낸 모두에게 지나간 과거로 남겨 추억으로 이야기하기엔 가혹한 날들이다.

영화 속의 비는 현실과는 다르게 낭만적인 구석이 있는 등장인물이다. 내리는 비는 멜로드라마에서는 사랑하는 두 연인이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순간 흩뿌려지는 내추럴한 특수효과로 기능한다. 이를테면 속은 바싹 타들어가지만 겉모습은 비로 인해 촉촉하게 유지하며 주인공들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내리고 흩날리는 비가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엽기적인 그녀'를 만들었던 곽재용 감독의 영화에는 비가 자주 등장한다. 이복남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애절한 톤으로 그려낸 '비 오는 날 수채화'는 제목부터 비가 주인공이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두 주인공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서로를 애타게 쳐다보는 장면이 있는데 비에 젖은 두 배우 옥소리와 강석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또 다른 곽재용 감독의 연출작 '클래식'에서도 비는 큰 역할을 맡은 바 있다. 갑자기 쏟아지는 캠퍼스의 비는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을 만들어낸 일등공신이었는데 교복을 입고 있던 조승우와 손예진 배우의 앳된 얼굴과 옷 하나로 비를 가리며 함께 비를 피하던 조인성과 손예진 배우의 멜로드라마적 순간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히트작들에도 비는 종종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등장한다. 지난해 말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날씨의 아이' 역시 제목에서부터 비 냄새가 물씬 맡아진다. 날씨를 조절하는 능력을 지닌 소녀 하나를 만난 가출 소년 호다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섬세한 작화와 정서적인 음악으로 가득 차 있다.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드라마틱한 비가 내리는 '날씨의 아이'와는 또 다른 서정적인 비의 향연이 펼쳐지는 작품이 있다. 바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중편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이 그 작품이다. 50분이 채 되지 않는 러닝 타임을 빼곡히 적시고 있는 '언어의 정원'의 빗소리는 음악처럼 아름답게 영화의 정서를 만들어내는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쿄의 신주쿠 공원을 촉촉히 적신 비의 마술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환상성과 근사한 시너지를 내며 국내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팬덤을 강화시킨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속 비들은 이처럼 정서적인 어떤 부분을 강화시키고 촉발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누군가가 "우울은 수용성"이라고 했는데 시국의 고단함이 이 비로 인해 말끔하게 씻겨 내려가길 기원해본다. 또한 창 밖의 비를 보며 영화 속 낭만의 한 때를 추억할 수 있는 안전한 일상이 복구되길 기도한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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