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택의 한라칼럼] 굴뫼오름의 비경과 비사를 찾아서

[문영택의 한라칼럼] 굴뫼오름의 비경과 비사를 찾아서
  • 입력 : 2021. 09.14(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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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오름 중 가장 넓은 오름은 군산이고, 역사문화가 가장 많이 깃들기로는 월라봉이고, 또한 두 오름은 80만년 전후에 생긴 쌍둥이 오름이란다. 굴러온 산이라 해서 굴뫼로도 불리는 군산은, 1374년 최영장군과 목호들이 치열하게 싸운 격전지이고, 일제가 1945년 미군의 공습에 대비하여 진지갱도들을 파헤친 곳이다. 증보 탐라지 등 고서에는 호산이라 불린 군산 주변에 왕자묘가 있다고, 왕자골이라 불리는 지역도 있다고 하나, 왕자묘는 누가 도굴.훼손했는지, 설화 속의 무덤인지, 군산을 뒤져도 아직은 찾질 못했다.

용왕난드르라 불리는 마을인 대평리로 넘어가다 사방으로 등정로가 난 군산을 이번에는 월라봉 동쪽으로 난 차도를 통해 올랐다. 오름 중턱에 세워진 '아기업개돌 만화판' 근처에 주차하고, 보일듯말듯 난 길을 헤치며 '소지왓 기슭에 있다는 전설 어린 농궤바위와 아기업게돌'을 찾아 길을 나섰다.

이곳에서 전해오길, 굴뫼오름이 생기기 전 이 곳 주변에는 시냇물이 사철 흐르고, 냇가 앞에는 학동들이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한 서당이 있어, 용궁에도 알려진 서당이라 글을 배우러 용왕의 아들도 몰래 다니곤 했단다. 시냇물 소리에 제자들의 글 읽는 소리가 묻히는 것을 아쉬워하는 훈장의 넋두리를 들으며 3년간 글을 배운 용왕 아들이 서당을 떠나는 날,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답례로 물소리 시끄러운 시내를 옮긴 것이 군산을 에워싼 지금의 풍경이란다. 이곳 사람들은 군산.월라봉.박수기정 등과 주변의 넓은 들을 선물한 용왕의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용왕난드르를 또한 마을 이름으로 삼고 있다. 한편, 북쪽에서 보면 군산은 군막 모양이고 남쪽에선 사자 모양이다. 그래서 군산 동남쪽 마을 이름을 사자 닮은 지형이라는 의미를 담아 예래(猊來)리로, 또한 난드르 마을 대평리 동쪽에 있다 하여 동난드르로도 부른다.

아기업개돌이 위치한 용왕난드르 근처의 도로명은 마소를 돌본다는 의미를 담은 소지기왓(밭)에서 유래한 소지왓로이다. 이 곳에서는 오래전부터 군산의 정기를 이어받을 아기장수가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느 날 갓난 아기의 울움소리에 잠을 깬 동네사람들이 소지왓의 테우리 집에 모여들었다. 군산의 정기로 태어난 아기라 여긴 테우리는, 아들을 업고 전설 깃든 농궤바위로 다가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아기장수가 태어나면 말, 갑옷, 보검이 들어있는 농궤의 문이 열린다는 전설을, 철썩같이 믿은 테우리는 기다리다 지쳐 그만 농궤바위를 망치로 내리쳤다. 그러자 농궤 귀퉁이에서 검붉은 피가 흐르고,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번개 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졌다. 그러고 머슴은 아기를 업은 채 돌이 됐다.

슬픈 전설이 깃든 애기업개돌 서쪽 100m 지경에는 성채 닮은 커다란 기암이 서있다. 이곳 주변 풍광에 매료된 용왕이 아기와 테우리의 간절한 사연을 달래주려 지어준 성채란다. 이렇듯 이곳 주변에 산재한 명품바위들을 바라보며 자란 젊은이들은 호쾌한 상상력이 저절로 생겨나, 큰 인물이 되리라는 다짐을 하곤 했단다. 두어번 찾아간 농궤와 아기업개돌로 가는 탐방로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오가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내가 간 이 길을 훗날 누군가 걷겠지 하며 성채바위 전설 하나 남긴다.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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