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12)월정리 해변에서

[황학주의 제주살이] (12)월정리 해변에서
  • 입력 : 2021. 11.30(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종종 저녁 무렵엔 집 근처 조천 바다에 나가 노을을 보지만, 잠이 일찍 깬 미명이면 월정리 해변 모래사장을 걷는 게 가장 그럴듯해! 오늘은 점심 약속이 있어 미리 월정리에 와 넓은 먹장구름을 이고 있는 바다를 본다.

바다다. 바다는 천국이며 극락이다. 바다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종교의 가장 너른 제단이다. 나는 그래서 바닷가에 오두막을 세우고 또 허물곤 했을까. 비어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도리 없이 길이 끊긴 곳을 찾아가 살았던 젊은 날의 나는 또 무엇이었을까. 부안, 고창, 우도, 강진, 강릉, 고흥 등지에서 내가 울지 못하고 우는 시늉만 하는 것도 어디론가 가지 못하고 가는 시늉만 하는 것도 바다는 다 알고 있었으며 보고 있었으리. 심지어 뉴질랜드나 캐나다에서도 바닷가 마을에 살았고 틈이 나면 자주 물 옆을 따라 내려갔다 멀리서 돌아오곤 했다. 많은 입구가 모인 바다의 초입을 더욱 좋아했고, 모든 길이 드나드는 항구를 보고 싶어 했다. 오, 성전을 차리는 바다의 일몰 앞에서 묵독이 모든 것인 저녁을 사랑했다. 육지의 모든 강들이 저마다의 삶을 지고 흘러들어와 모이는 곳에서 나는 깨복쟁이 소년이 되었다 물고기의 뼈대만 싣고 한밤중에 돌아오는 지친 노인이 되기도 했다는 것.

오늘 우리가 만나면 3년 만이고 제주에서는 처음 보는 것인데 이제 친구라고 해서 항상 볼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대가 아프다는 사실이고,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월정리 바다 앞에서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부디 부드러운 해변의 물결과 얹히기를 바랄진대 열심히 살아보려 했던 아, 누가 오고 있다. 병이 깊어져서.

예로부터 물이 지니는 치유의 힘을 체득하고 있었기에 오늘날에도 열대 국가와 따뜻한 나라의 원주민들이 진통 중에 바닷가의 얕은 물속을 걷거나 물이 보이는 곳에서 아기를 낳는 사례가 알려져 있다. 물과 물 흐르는 소리, 혹은 바다와 파도 소리가 영적인 울림을 미치는 이치는 가슴을 때리지 않는가. 역동적인 움직임과 소리가 고요한 묵념의 세계를 잉태시키는 그 놀라움 말이다.

먼 옛날 지구가 생성될 때 생긴 물질들 중 우주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극히 소량이라는 과학적 지식에 근거한다면, 오늘 내가 보고 있는 바닷물은 수십억 년 전의 그 바다이며 오늘 내 발끝에 닿는 물 한 방울은 수십억 년 전 어느 동물이 따뜻한 늪지 같은 곳에서 낮잠을 즐길 때 콧등에 맺혀있던 물 한 방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만 있다면 지치고 상한 누군가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주고 메마른 허무감으로 늙어가는 사람에게 파도 소리라도 되어 주고 싶지만 우리는 생각대로 살지 못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되어 살기 쉬우니, 무엇인가 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오늘 한 바닷가에서 정처가 없다. <시인>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9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