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진보(進步)와 진화(進化)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진보(進步)와 진화(進化)
  • 입력 : 2021. 12.08(수)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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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World Water Day)이다. 다가올 2022년에는 '지하수:보이지 않는 물을 보이게(Groundwater : making the invisible visible)'라는 주제가 선정됐다. 그런데 지난 11월 말쯤 제주도 지하수 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는 기사가 있었다. 혈세 4000억원 가까이 투입해 여과 공정을 도입해야만 할 정도라고 했다. 이 막대한 혈세도 문제겠지만, 중요한 것은 청정이란 이름의 상실과 소중한 자원에 대한 경영의 부실과 관리의 부재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제주도민은 물론이고 각 지역의 문제들을 살피고 찾아내야할 도의원들이나 학문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할 학계의 전문가들조차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제주도의 산업 구조 및 도시화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 지하수 고갈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자 물을 얻기 위해 지하수를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비용을 들여 깨끗한 물을 만들어 지하수를 채워 넣는다고 한다.

대선 정국을 바라보며 40년 전, 30년 전 그리고 20년 전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에 씁쓸하다. 서민 정책이 그렇고 대북 정책이 또 그렇다. 특히 부동산 문제나 경제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정책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는 곧 고도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해야 옳다. 언제나 그랬지만 지금 사자후로 토해내는 후보들의 말들이 대선 후 공소한 말들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대선 후 곧 지방선거인데 제주도민들은 얼마나 많은 공허한 공약으로 제주의 본질적 문제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게 되겠는가.

가끔 진보와 진화의 의미가 교차하거나 겹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진보(進步, progress)는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지는 것, 또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진화(進化, evolution)는 생물학적 의미로 생물이 생존하는 데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돼온 과정을 말한다. 광복 전후의 시대상을 살아낸 이인국 박사라는 인물의 삶을 풍자한 전광용의 ‘꺼삐딴 리’는 진보와 진화의 의미를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게 한다. 삶의 질과 관련된 진보와 삶의 선택과 닿아있는 진화다.

우리는 제주도에서의 삶이,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가 진보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한 진화의 과정일 뿐인가. 타 지역으로부터 제주를 찾은 지인들이 제주의 에메랄드빛 바다, 원시림이라고 할 만한 한라산 둘레길, 전국 판매율 1위를 차지하는 삼다수를 입에 닳도록 찬양할 때마다 몹시 곤혹스럽고 부끄러웠다. 한라산신제를 지내는 한라산 초입 산천단(山川壇)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모여 콘크리트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이런 개발을 진보라고 하려니 우습고, 자연선택이며 생존 방향이라고 하려니까 참으로 두렵다.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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