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항생제 무력화 '슈퍼 박테리아' 제주 첫 대규모 감염

[단독] 항생제 무력화 '슈퍼 박테리아' 제주 첫 대규모 감염
제주시내 모 종합병원 중환자실서 23명 CRE 감염
감염자 23명 중 10명 항생제 분해하는 CPE 검출
혈관 침투시 패혈증 등 초래… 치사율 50~60% 육박
  • 입력 : 2024. 01.11(목) 17:20  수정 : 2024. 01. 14(일) 19:37
  • 이상민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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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이 없습니다. 한라일보 자료사진.

[한라일보] 제주에서 항생제가 소용 없고 전파력도 강해 '슈퍼 박테리아'로 불리는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속균종(CRE)'에 중환자 수십명이 집단 감염하는 사태가 첫 발생해 보건당국이 역학조사에 착수했다.

11일 한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8일 도내 A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 1명이 CRE양성 판정을 받은 것으로 시작으로 이날 현재까지 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23명이 CRE에 감염됐다.

CRE는 '최후의 항생제'로 꼽히는 '카바페넴' 계열 항생제에 내성(약효가 없는 것)을 지닌 장내 세균을 말한다. 사람 장에 원래 정상적으로 존재하지만, 요로 또는 혈관에 유입되면 패혈증과 같은 심각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고 전파력도 높다. CRE는 2급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돼 감염자를 발견한 의료기관은 24시간 이내에 보건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CRE의 일종인 '카바페넴 분해효소 생성 장내 세균속균종'(CPE)'는 사람에게 더 치명적이다. CPE는 카바페넴 계열 항생제 자체를 분해하는 효소를 갖고 있어, 항생제를 아예 몸 속에서 사라지게 만든다. 가령 의료진이 몸 속 다른 유해 세균을 억제하려 항생제를 투입했는데, 환자 몸안에 CPE가 있다면 항생제가 분해돼 CPE 뿐만 아니라 죽이려던 다른 세균도 그대로 살아남는다.

CPE는 CRE보다 환자 치료를 더 어렵게 해 의료계에선 슈퍼 박테리아라고 부른다고 한다.

제주도보건환경연구원이 CRE에 감염된 A병원 환자 23명을 상대로 검체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이중 10명에게서 CPE가 검출됐다. 감염자 23명은 현재 모두 격리된 상태다.

제주에서 CRE·CPE 집단 역학조사가 시작된 이래 특정 의료기관에서 10명 이상 감염자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RE·CPE 집단 역학조사는 서로 간의 전파 개연성이 있는 감염자 수가 2명 이상일때 진행되며, 지금까지는 그 규모가 2명 이상을 초과한 적이 없었다.

보건당국은 CRE·CPE가 A병원 중환자실에서 자체 증식해 환자에게 전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도 역학조사관은 "감염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첫 감염자에 대해 역학 조사를 한 결과 해당 환자는 CRE·CPE 보유자와 접촉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중환자실 특성상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CRE 또는 CPE가 자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병원 내 감염자 중 균이 혈관으로 침투해 위중한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CRE·CPE 환자'는 아직 없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도 역학조사관은 "의학적으로 CRE·CPE 환자는 균이 혈관으로 침투해 몸 전체에 퍼진 감염자를 지칭하며, 이럴 경우 치사율이 50~60%에 달할 정도로 매우 치명적이다"며 "A병원 내 감염자는 혈관 침투로 이어지지 않아 '보유자'로 분류되고 있지만, 애초부터 중환자이기 때문에 부득이 기도 삽관 등을 시행해야 할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균이 혈관으로 침투할 가능성이 높아 지속적으로 추적 관찰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CRE·CPE 대규모 집단 감염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라 현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당국은 A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모든 환자를 상대로 일주일마다 한 번씩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병원 측에 의료기기 소독과 의료진 위생 관리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에서 발견된 CRE 감염자 237명 중 10명이 사망했으며, CPE 양성률은 80% 수준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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