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나의 당투성이 사회

[영화觀] 나의 당투성이 사회
  • 입력 : 2024. 01.12(금) 00:00  수정 : 2024. 01. 12(금) 16:15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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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한라일보] 유지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여성 소설가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첫 작품이 성공을 거두었고 두 번째 작품의 출간이 빠른 속도로 출판사와 진행되는 와중에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주목받는 신인 소설가 재이는 영어 강사인 건우와 한집에서 함께 산다. 둘은 비혼, 비출산 커플이다. 둘의 역할은 적절하게 분배된 듯 보인다. 서로의 삶에 대해 인정하고 배려하며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둘은 행복한 매일을 맞이한다.

그런 그들에게 원치 않던 아이가 생긴다. 영화의 영제인 'Birth'는 생명의 출산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재이가 출산보다 간절하게 원하는 '탈고와 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두 가지 선택 모두가 가능하다고 타인은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재이에겐 선택이 어렵지 않다. 재이는 원하는 하나의 선택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무수한 것들로 쌓여진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없는 데다 더 잘할 수 있고 더 잘하고 싶은 선택을 하는 것이 재이의 인생에서는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소설과 아이, 둘 모두를 품에 안은 재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겹들과 부딪히기 시작한다. 재이가 창조한 두 세계는 결코 평화롭게 합쳐지지 않는다. 영화는 재이가 그 과정의 관문들을 넘는 순간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바라본다.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정직한 욕망과 간절한 소망에 대해서.

우리는 삶의 선택들 앞에서 현명하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늘 기도에 가깝다. 어떤 선택도 안전하지 않은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나의 완성 때문만이 아니라 무서울 정도로 미완성인 사회에 우리가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다 보니 정직한 목표는 뜬 구름 잡는 소리가 되어 버렸고 일상도 일터도 오디션장처럼 되어 버린 지금에서 선택의 이후는 곧바로 무대로 올려진다. 앞과 뒤와 옆에서, 어느새 세워진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누군가의 삶이 성공과 실패로, 예스와 노로, 극복과 포기로 반토막 나 전시되곤 한다. 덜컹거리는 무대 위에는 또 다른 참가자가 올라오기에 실패한 삶은 빠르게 시야에서 제거된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서 재이와 건우가 사는 집 근처에는 수명을 다한 것처럼 보이는 가로등이 위태롭게 점멸한다. 어둠이 무서워진 도시에서, 걸어서 골목을 걷는 재이에게 가로등은 희망인 동시에 절망이 된다. 재이는 글을 쓸 때 조개껍질 위에 작은 티라이트 하나를 켜둔다. 그 타이머일 수도 있고 미량의 온기일 수도 있는 그 불빛에 의지해 나와 타인의 삶을 써내려 간다.

소설가도, 엄마도 쓰고 고독한 직업이 된 시대다. 무턱대고 탄생을 바라고 축복하자는 말들은 무책임한 당도로만 채워진 것 같다. 타인의 삶을 쓰려는 이들에게는 달콤한 위로보다 더 필요한 것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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