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68] 3부 오름-(27)개오리오름은 '갈올', 맞은편 장올의 대비지명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68] 3부 오름-(27)개오리오름은 '갈올', 맞은편 장올의 대비지명
‘견월악’ 혹은 ‘개오리오름’은 골짜기가 있는 오름
  • 입력 : 2024. 02.13(화) 00:00  수정 : 2024. 02. 13(화) 13:02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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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너리오름의 또 다른 지명
갈체오름은 골짜기가 있는 오름

도너리오름을 돌오름이라고 표기한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돌'이라고 하면 당연히 돌(石)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고대인들은 지명에서 흔히 '달(달)'을 썼는데, 전부요소로는 '높은', 후부요소로는 '산'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간혹 도을악(道乙岳)이라는 표기도 볼 수 있는데, '돌악'을 음가자로 표기한 것이다. 실제 뜻은 높은 오름이다.

흥미로운 점이 주민들은 갈체오름이라고도 부른다는 것이다. 어느 책에는 갈체 모양을 한 오름이란 뜻에서 유래한다고 했다. 갈체란 삼태기를 말하는 것으로 흙이나 거름 따위를 담아 나르는데 쓰는 기구다. '갈체'란 많이 담을 수 있도록 '골짜기처럼 깊은 체'의 뜻에서 유래한 이름일 수 있다.

갈체오름의 지명 역시 '갈체+오름'의 구조로 보는 순간 삼태기를 연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이름은 '갈체+오름'의 구조다. 예컨대 '갈세오름'은 '갈+세+오름'인 것과 같은 이치다. 사실 '오름'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나타내는 후부요소를 쓴 언어집단이 오기 전에 이미 '갈체'라고 썼던 언어집단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갈+체'의 구조로 '갈체'를 쓴 것이다. '체'라는 말은 후부요소다. 즉, '체'란 '생', '송', '싕', '숱', '삿', '싕', '슬', '세', '쉐', '시', '서'처럼 '수리' 혹은 '술'과 같은 뜻을 가지는 봉우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갈'이란 '골(짜기)'의 뜻이다. 그러므로 '갈체오름'이란 '골+오름+오름'을 나타낸 것이다. 결국, 갈체오름이란 어원상 골(짜기)가 있는 오름의 뜻이다.

철탑이 있는 봉우리가 개오리오름의 주봉, 정면 봉우리는 족은개오리, 그 사이 샛개오리, 주봉 건너에 물장올이 보인다. 강경민



견월악은 개오리오름의
한자명, 갈올에서 기원

갈체오름이란 지명에서 수리에 해당하는 후부요소로 '체'라는 지명어가 제주어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어원적 뜻으로 볼 때 도너리오름을 갈체오름이라고 한다는 표현은 부자연스럽다. 이 오름은 두 개의 봉우리로 되어있다. 그중 원추형 오름은 도너리오름, 말굽형 오름은 갈체오름이라야 자연스럽다.

지도에 개월이오름, 견월악 등으로 표기하는 오름이 있다. 5·16도로변 마목장과 연접해 있으며, 정상에 여러 개의 철탑이 설치된 오름이다. 해발 743m의 주봉, 664m의 족은개오리, 658m의 샛개오리라 부르는 크고 작은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다양한 형태다. 이 봉우리들 사이마다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어 구분된다.

도너리오름과 골체오름. 김찬수



주민들은 가으리오름, 개오리오름, 개워리오름, 개워리오름, 개월오름, 가은이오름, 가을이오름 등으로 부른다. 이런 이름을 기반으로 묘비 등에 표기할 때는 개월이(開月伊), 개월이봉(開月伊峰), 추월봉(秋月峰)로 하는 것이다. 개월이(開月伊)는 음독자를 그대로 표기한 것이고, 추월봉(秋月峰)은 '추(秋; 가을)'의 훈 '가살' 또는 '가알'의 어두음 '가'를 차자하여 '가월오름'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1653 탐라지와 1656년 유형원의 동국여지지에는 표악(表岳)으로 기록했다. 이런 표기는 좀 뜸하다가 1866년에 와서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다시 나타났다. 이 표악이란 무슨 뜻인가는 좀 검토가 필요하다. 이 글자는 '걷(겉)'의 뜻을 가지는데, '걷'의 고어형은 '갈'이다. 그러므로 표(表)는 훈독자로 사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703년 탐라순력도에는 병오리(竝五里)로 기록했다. 1707 탐라지도, 1872 제주삼읍전도 병악(竝岳) 또는 병악(병(岳)으로 기록했는데, 병()자는 병(竝)의 약자이므로 두 글자는 같은 글자다. 나란히 병이라고도 하지만 한자입문서인 1583년 천자문과 1576년 신증유합에는 '갈올 병'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병악이란 훈가자로서 '갈올오름'을 표현한 것이다. 견월악(犬月岳)이라는 이름이 1954년 증보탐라지, 최근인 1965년 제주도라는 책에 나오는데 개월이오름의 훈독자로 쓴 것이다.



골짜기가 있는 골올,
호수가 있는 장올의 대비지명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이 '골올오름'을 가오리를 닮았다거나, 개가 달을 보고 짖는 형상, 두서너 개의 오름이 나란히 누워 있는 쌍둥이 오름이라는 뜻으로 설명하는 실정이다. 이런 풀이들은 이 지명의 구조를 '골올+오름'으로 본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렇다면 앞의 '달올(도너리오름)', '물장올', '테역장올', '살손장올', '화장올(불칸디오름)'에서 보듯 이 돌림자 '올'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이런 돌림자가 후부요소라는 것이다. 산, 강, 호수, 평야 같은 것들이다. 여기에 보이는 '올'은 오름의 고어형이다. 그러면 그 앞에 있는 '갈'은 전부요소가 된다. 걸세(오름)가 'ㄹ'탈락으로 가세(오름)가 되는 것과 같이 가오리, 개오리 등은 'ㄹ'이 탈락한 상태다. 이와 달리 '갈오리'나 '갈올이' 등은 'ㄹ'이 탈락하지 않은 형태다. 이 오름의 지명에서는 이같이 여러 개의 음운변화를 간직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큰개오리, 샛개오리, 작은개오리가 각각 다른 오름이 아니라 하나의 큰 오름으로서 골이 패인 오름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바로 붙어 있는 장올(물장올)은 호수가 있는 오름이다. 이에 대응하여 갈올은 골(짜기)이 있는 오름이라고 본 것이다. 개오리는 갈올의 변음이다. 그러므로 개오리오름은 어원상으로 골(짜기)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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