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2년마다 열리는 국제미술전'인 비엔날레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16개 이상이 운영되고 있다. 서울, 광주, 부산, 대전, 대구, 공주, 청주, 창원, 목포, 강릉, 경기, 제주 등 지방자치단체마다 하나 두 개씩 끌어안은 모양새다. 하지만 비엔날레의 천국이라는 오명과 더불어 비엔날레를 둘러싼 비판이 그치지 않고 있다. 지자체들이 안일한 접근, 대중들의 무관심, 미술계 종사자들의 과욕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제 비엔날레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그 근본을 따져볼 때가 됐다.
우리나라 비엔날레의 창설 배경은 1995년 지방자치제도의 시작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예술과 권력 사이의 역학적인 관계를 선거에 끌어들여 군중의 의식을 집결시키고 연대감을 높이는 장치로 비엔날레는 더없이 유용한 도구였다. 비엔날레의 맏형인 광주비엔날레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항쟁의 상처를 문화예술로 치유하고 역사의 맥락으로 편입하기 위한 문화적 쟁의의 실험장으로 부각되면서 후발 비엔날레의 창설에 정당성을 제공했다.
이후 비엔날레는 지역발전과 관광산업 그리고 도시재생과 같은 과업을 스스로 부과하면서 존립의 명분을 얻어내었다.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해 독일의 카셀도큐멘타와 뮌스터조각프로젝트와 같은 명품 행사를 벤치마킹하며 조각, 공예, 미디어, 사진, 건축, 수묵 등의 특정 장르를 내세운 전문비엔날레의 등장을 촉진시켰다.
비엔날레의 증식과 더불어 등장한 이슈의 하나는 미술관과의 차별성이다. 비엔날레가 지구촌의 문화와 정치 혜게모니의 각축장으로 기능한다면 미술관은 지역의 미술사와 미술문화를 활성화하는 기관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예술감독의 역량에 의존하는 비엔날레와는 달리 미술관은 국가의 문화정책과 관련 법령으로 업무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큰 차이점이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미술관의 기능을 '미술에 관한 자료의 수집, 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 교육하는 시설'로 제한하고 있다. 한편 비엔날레의 특수성은 미술관뿐만 아니라 미술제나 아트페어, 그리고 블록버스터형 미술 전시회와도 차별화된다. 미술제는 지역 공동체의 화합과 문화정체성의 표현에 중점을 둔 행사로 기능한다. 그리고 아트페어와 블록버스터형 미술 전시회는 작품을 파는 것이 1차 목표인 상업적 미술전의 성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최근 4회를 앞둔 제주비엔날레를 두고 잡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도립미술관장이 예술감독을 맡을 수도 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비엔날레 폐지의 위기감마저 느껴진다. 목적과 소명이 다른 미술관이 비엔날레를 아우른다면 그것은 이미 비엔날레가 아니다. 지자체와 대중 그리고 전문기획자의 관계와 역할을 따져봐야 할 때다. 비엔날레가 특정 권력의 힘이나 기관에 의해 동맥경화 증세를 지닌 전시회로 전락한다면 머지않아 비엔날레의 해체 도미노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영호 중앙대 명예교수·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