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만의 한라시론] ‘소요사태’라는 난제

[고성만의 한라시론] ‘소요사태’라는 난제
  • 입력 : 2024. 05.30(목)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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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지난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등장한 4·3 의제 가운데 눈에 띄는 부분은 4·3특별법 '제2조(정의)'를 개정하겠다는 후보들의 공약이었다.

정의(正義)로운 해결을 주창하는 과제들이 지난 선거에서도 제시된 바 있지만, 특별법의 정의(定義) 조항을 손질하겠다는 공약을 전면에 들고나온 건 이례적인 일이다. 2004년에 열렸던 법 개정 토론회에서 정의 조항만큼은 절대 고칠 수 없다던 지역구 의원의 발언이 나온 지 20년 만의 일이라는 점에서 그간의 사회 변화를 실감케 한다.

그러나 충분한 검토와 토론은 생략된 것처럼 보인다. 우선 어떠한 '정의'를 개정하려는 것인지, 가령 '소요사태'와 '무력충돌', '강경진압', '주민 희생'을 골자로 하는 '사건'의 정의인지, '희생자, 유족'의 정의인지, 아니면 2022년 법률이 개정되면서 추가된 '보상금' 또는 '보상금 등'의 정의인지 불분명하다.

또한 현시점에서 정의는 왜 바뀌어야 하며, 어떻게 바꾸려는 것인지에 관한 방향성도 확인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22대 국회에서 정의 조항을 개정하지 않으면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부닥치게 될지에 대한 진단도 제시되지 않아 혁신적 공약이 자칫 선언적 구호에 그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4·3특별법과 정부 위원회는 1947~1948년 제주 사람들의 집단행동을 '소요사태'로, 그것을 주도했던 이들을 '희생자 제외대상'으로 선별하는 합의를 고수해 왔다. 그 사이 진상 조사를 통해 4·3의 배경과 원인이 규명되고 대통령 사과를 통해 정부의 입장은 '무장봉기'로 전환된 바 있지만, 법률상 정의는 여전히 2000년 제정법의 '소요사태'에 묶여 있다. '소요사태'라는 잔재는 지난 20여 년간 이어져 온 진상규명 운동의 성과와 역사 인식의 변혁에도 불구하고, '과거청산'의 사회화가 요원한 우리의 현실, 즉 퇴행을 방증한다.

'소요사태'든 '무장봉기'든 왜 발생했는지, 그것이 당시의 점령 정책에 어떠한 측면에서 어떻게 위협적이었고, 결국 그 점령의 실체는 무엇이었는지, 그로 인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 '희생'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기 위해서라도, 이제 '소요사태'와 '희생자 제외대상'이라는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닫아 두었던 문을 열 때다.

22대 국회가 다루어야 할 4·3 의제가 '1954년 9월 21일' 이후의 피해자나 '수형인'으로 수렴되기 어려운 구금 피해자를 '희생자'에 추가하고, 왜곡·폄훼·허위 유포에 대한 형벌 조항을 추가하며, 국립트라우마센터를 재설계하는 일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4·3특별법 제·개정의 역사를 복기하며, 시도해 왔으나 차선 과제로 분류되어 실현되지 못했던 과업의 목록들을 시급히 재구성할 때다. 거의 모든 의제가 불안한 '제2조(정의)'와 연동되는 만큼, 22대 국회가 밑돌을 재구축하는 일에 진지하게 접근해 주시길 기대한다. <고성만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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