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잇는사람들](5)순대국밥집 진순복씨

[代를잇는사람들](5)순대국밥집 진순복씨
"이문 보단 추억·사람 남아"
  • 입력 : 2008. 02.16(토) 00:00
  • 이현숙 기자 hslee@hallailbo.co.kr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시어머니에 이어 2대째 '순대골목'을 지키고 있는 진순복씨가 국밥을 뜨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시어머니 이어 2대째 국밥 말아
인정·맛 찾는 손님 맞는게 보람
손 큰 시어머니 덕에 단골 여전


입춘이 지났는데도 칼바람이 몰아쳤던 지난 13일. 예년에 비해 춥지 않은 겨울을 보냈기 때문일까 더 춥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추울수록 더욱 생각나는 음식이 바로 '순대국밥'이 아닐까.

이날은 반세기를 넘기는 세월동안 한 자리에서 시어머니부터 며느리까지 이어 순대국밥을 말고 있다는 '순대골목 터줏대감' 진순복씨(50·광명식당 운영)를 만나러 사람냄새 가득한 제주시 동문공설시장에 간 날이다.

현대화된 건물 1층에 자리잡은 식당문을 열고 들어가자 설문대 할망이 아들들을 위해 끓였을 것 같은 큼직한 가마솥위로 뽀얀 김이 자욱했다. 여기에 순대냄새에 막걸리, 푹 익은 김치냄새까지 아침을 거른 기자의 허기를 자극했다.

'할망집'이라고 불리는 순대골목의 '원조할망'은 바로 진씨의 시어머니인 고(故) 김순심씨. 김씨는 지난 11년전 돌아가시기 전 까지 이곳을 30년 넘게 지켰다. 그 뒤를 이어 며느리가 30여년동안 버티고 있다.

"스물네살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드렸어요. 83세가 되셔서 돌아가셨는데 정말 '손이 큰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어머니가 보고싶다면서 당시 학생이었던 70대 할아버지들이 찾기도 합니다."

진씨의 회상은 이어졌다.

"그땐 이 주변에 순대국밥집은 우리집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둘씩 생기더니 '순대골목'이 됐어요.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한때는 대단했어요."

진씨는 이렇게 어머니의 후덕한 인심과 손맛 때문에 순대골목이 만들어졌다는 자부심을 늘 갖고 있다.

"오래전부터 축산물공판장에서 잡은 제주산 돼지고기와 내장으로 국밥을 만들죠. 여기에 하루종일 우려낸 국물에 20가지에 이르는 갖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찹쌀순대가 맛있으니 당연히 국밥도 끝맛이 좋을 수 밖에…."

진씨가 맛을 직접 보라며 순대를 큼직하게 썰어 내놨다. 뜨끈하게 쪄낸 순대는 허기를 위로하고도 남았다.

진씨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먹을거리는 세월에 따라 변했지만 여기 인심은 옛날 그대로라는 말을 듣고 싶다"며 손님들에게 연신 국물을 퍼줬다.

"이문을 내려고 장사를 하지만 그래도 남는건 이문보다는 사람이나 추억이야. 단돈 몇천원을 내지만 내가 정성스럽게 만들어낸 국밥 한그릇을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은 아무도 모르지."

'손이 큰 시어머니'를 빼닮은 진씨가 어머니의 순대국밥집을 지킨 것처럼 지금은 딸과 며느리가 가끔 일을 배우면서 돕고 있다. 언젠가는 딸이나 며느리에게 이 자리를 물려줄 생각이지만 그는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오래도록 순대를 만들 참이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1 개)
이         름 이   메   일
9098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