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br>'머리 치워' 소극장은 그만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br>'머리 치워' 소극장은 그만
  • 입력 : 2008. 06.17(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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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문예회관 소극장 공연 비좁고 불편한 객석의 고통
잘지은 작은 공연장은 없나


무대에 불이 켜지자, 객석이 잠시 술렁였다. 자리를 옮기려는 사람들의 연쇄 이동이 벌어진 것이다. 덧마루위에 의자를 올려놓았는데 몇몇 곳에선 앞사람의 머리에 가려 무대가 보이지 않았다. 오영순씨가 귀에 착착 감기는 제주어로 소극장에 막 열기를 지펴나갈 때였다.

지난 15일 문예회관 소극장. 우리문화연구소 제주꽃놀래가 4·3 60주년과 개소를 기념해 마련한 1인극을 찾은 관객들은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몇차례 옮겨 앉기를 반복했다. 덧마루 귀퉁이에 비스듬히 놓여진 의자에 앉으려다 철퍼덕 넘어진 관객도 있었다. 그래도 1시간 가깝게 의자에 앉아 공연을 즐길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이보다 이틀앞선 13일 저녁 문예회관 소극장. 사물놀이 탄생 30주년을 기념해 전국 소극장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민족음악원이 제주에 왔다. 사물놀이 '원년 멤버'이광수 등 실력있는 광대들이 2시간 가량 우리 가락의 흥겨움을 빚었다. '좋다', '얼씨구'하는 추임새가 끊이지 않는 무대였지만 관객들은 더러 불편을 겪었다.

행사에 쏠린 관심에 비해 공연장은 비좁았지만 주최측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공연장을 구할 당시 대관 가능한 소극장은 문예회관이 유일했으니까. 문예회관 소극장은 2백석 규모다. 사물놀이를 펼칠 수 있는 마당판을 만들려면 객석을 더 줄여야 했다. 이동식 의자를 놓는 대신 덧마루를 깔기로 했다. 대부분의 관객은 덧마루에 '쪼그려'앉았다. 무대의 신명이 없었다면 관객들은 당장이라도 그 공연장을 뛰쳐나갔을지 모른다.

제주섬의 공연·전시 시설은 다른 지역에 뒤지지 않는다. 제주도가 내놓은 '2007문화관광스포츠현황'만 보더라도 공·사립 공연시설이 15곳에 이른다. 거기다 제주도가 제주시 오라동에 한라문화예술회관을 짓고 있고, 서귀포에도 조만간 서귀포종합문예회관 공사가 시작된다.

공연장은 차고 넘치지만 '쓸모있는'시설이 적은 게 문제다.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은 제주도문예회관을 보자. 소극장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오래됐지만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좀체 달라지지 않고 있다. 도문예회관처럼 문화공간 운영 노하우가 쌓인 곳에 문화예술인들에게 맞춤한 소극장 하나 없다는 점은 답답한 노릇이다. 한라문화예술회관은 도문예회관 대극장보다 3백석쯤 많은 1천1백석 크기의 극장은 만들지만 소극장 건립 계획은 없다.

잘지어진 공연장은 문화예술인과 관객을 변화시킨다. 아담한 규모의 극장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지는 상설 무대에 대한 추억이 적은 제주에선 작은 공연장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크다. 문화행정이 헤아려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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