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문학의 현장](29)김길호의 '이쿠노 아리랑'

[4·3문학의 현장](29)김길호의 '이쿠노 아리랑'
조선시장에 흘러든 상처 이젠 멈췄을까
  • 입력 : 2008. 09.12(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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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끌고 조센이치바를 찾은 소설가 김길호씨. 스물넷이란 청년기에 일본으로 밀항한 그는 이쿠노에 30년째 살면서 재일동포들의 속깊은 이야기를 소설에 담아내고 있다. /사진=김명선기자

조센이치바 '멩지루'할머니 거친 생애 담은 중편
4·3 피해 밀항한 오사카 이쿠노의 생활은 귀양살이
"습격해 죽이고 내통했다고 다시 죽이는 미친 시대"


▲조센이치바 입구에는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란 노란 펼침막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이걸 볼 때마다 화가 납니다." 자전거를 끌고 길을 걷던 작가가 한마디 던졌다. 제주출신 재일동포들이 모여사는 곳인데 제주방언으로 쓴 인사말을 내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말 끝에 오사카 이쿠노에 사는 재일동포가 3만명이 넘는데 그중 70%가 제주출신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저거, 바꿔야 합니다." 작가는 일본어투가 느껴지는 짤막한 문장으로 또한번 다짐받듯 말했다.

파전 냄새가 흩어지는 이쿠노쿠(生野區)의 '코리아타운'. 이곳의 정식 명칭은 입구에 달린 간판에 쓰여있는 것처럼 미유키모리 쇼오텡가이(御行森商店街)지만 그곳 사람들은 '조선시장(市場)'이란 뜻의 조센이치바로 더 많이 불렀다. 재일동포의 상징적인 시장이자 장소로 언론에서 '코리아타운'으로 칭하기 시작하면서 그 이름으로 알려졌다.

이쿠노에서 30년째 살고 있는 소설가 김길호씨(59)는 조센이치바를 배경으로 중편소설 '이쿠노 아리랑'(2005)을 썼다. 2㎞쯤 길게 이어진 조센이치바엔 제주출신 재일동포들의 지난한 생애가 넘실댄다. 작가는 그곳에서 김치가게를 운영하는 고기생 할머니의 삶에서 모티브를 끌어낸 뒤 상상력을 더해 '이쿠노 아리랑'을 낳았다.

▲오사카시내를 순환하는 전철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설가 김길호.

"처음 일본에 왔을 때의 생활은, 그때 저를 도와준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귀양살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제주도의 비극을 나 혼자 등에 지고 온 것처럼 지내는 저에게 친지들은 등을 두드려주면서 위로해주고 보살펴주었지만 솔직히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가슴은 더욱 터졌고 지금 생각하면 미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이쿠노 아리랑')

소설속 고 할머니는 4·3때 시아버지와 남편을 잃었다. 삼양동 가물개에서 소문난 의사였던 시아버지는 '폭도'들에게 약을 주며 내통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결국 죽임을 당했다. 남편은 아버지를 죽인 청년대원을 죽이고 피신하다가 살해됐다. "가난하지만 평화스러웠던 마을을 난데없이 습격하여 죽이고 난 다음날은 그들과 내통했다고 다시 죽이는 미친 시대"('이쿠노 아리랑')였다.

할머니의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살배기때 생이별했던 큰아들이 베트남전쟁에 파병돼 죽었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빨갱이로 낙인 찍혀 죽은 게 수십년전인데 아들은 '공산주의와 과감히 싸우다' 전사했다.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이 여인을 덮친다. 재혼해서 낳은 둘째 아들은 '북조선'을 선택했다.

▲조센 이치바 입구에 흐르고 있는 히라노가와. 밀항을 통해서 오사카를 찾은 동포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명절을 뜻하는 제주어 '멩질'을 '멩지루'로 부르는 고 할머니. 일본에서 보낸 세월의 때는 좀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제주섬 토박이 언어까지 바꿔놓았지만 4·3의 기억은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고 할머니가 간신히 과거로 거슬러올랐듯, 4·3을 피해 일본으로 떠밀려온 사람들은 그날을 잊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쿠노쿠의 어느 공원에서 만난 조천읍 신촌 출신 할머니는 "4·3때 얘길 하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냐"며 말을 피했다.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을 때우는 제주사람들이 모여드는 조센이치바 골목 '에덴'다방의 여주인은 4·3 60주년이 되는 올해야 입을 뗐다. 주인은 4·3때 무장대사령관이던 이덕구의 조카다.

소설은 야만의 시대에도 '의인'은 있었다는 점을 그려낸다. 4·3 당시 삼양지서 순경이었던 양동일은 스님이 됐다. 할머니의 시아버지와 남편을 살리지 못했던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사는 인물로 고 할머니의 일본행을 도왔다. 그것은 재일동포 사회를 민단과 총련으로 갈려 반목하는 곳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소설속 고 할머니의 둘째아들 명석이 중학교때 쓴 '줄다리기'란 작문 내용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지금 이 줄다리기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면 우리들은 다 동포 학생들이다. 서로 흩어져서 혼자일 때는 도저히 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큰 힘이다. 동포끼리 힘을 모아 굳게 살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힘의 발견이었다."('이쿠노 아리랑')

4·3 당시 산으로 올랐던 사람들은 분단된 조국을 반대하던 이들이 아닌가. 일본속의 제주 사람들은 섬 밖에서 여전히 분단된 현실을 지켜보며 참극으로 끝나버린 그 꿈을 다시금 깨우고 있는지 모른다.

▲조센이치바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재일동포와 인사를 나누는 작가 김길호.

▲4·3때 무장대 사령관이던 이덕구의 조카가 운영하는 다방 에덴. 이른 아침부터 제주출신 동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조센이치바에는 김밥 파전 떡볶이 등 다양한 한국음식을 파는 가게가 여럿 있다.

한국어로 소설 쓰는 재일작가…재일동포의 숱한 사연이 글감

이쿠노쿠 생활 30년째 김길호씨


제주시 삼양 출신인 재일작가 김길호씨는 이력이 특이하다. 일본에 살면서 한국어로 소설을 쓴다. '이쿠노 아리랑' 역시 우리말 번역이 필요없는 작품이다.

그는 청년 시절 일본으로 건너왔다. 1973년의 일이다. 부산에서 당시 30만원의 돈을 주고 밀항선을 탔다. 우연히 밀항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움직여 감행한 일이라고만 했다.

친척이 살고 있긴 했지만 일본 생활은 고달펐다. 플라스틱 공장에서 아침 8시부터 밤8시까지 꼬박 일했고 철공소도 다녔다. 제주에서 집으로 돌아오라는 성화가 이어질 때쯤 6개월간 일을 접었다. 이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1987년 한국 문예지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에겐 이쿠노쿠에서 만난 재일동포들의 삶이 중요한 문학 소재다. 조센이치바에 동행할 때도 제주출신 상인들이 운영하는 김치가게에서, 정육점에서, 커피숍 앞에서 인사를 나누기 바빴다.

▲'이쿠노 아리랑'의 모델이 된 할머니가 조센이치바의 김치가게에 아침 일찍 나와 조카와 함께 콩나물을 다듬고 있다.

'이쿠노 아리랑'에서 고 할머니란 인물을 낳게 된 고기생씨(90)의 김치가게는 소설속처럼 성(姓)을 딴 간판을 달았다. 표선면 세화2리에 큰 아들이 있다는 할머니는 이른 시간부터 조카와 함께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서른을 겨우 남긴 나이에 아기를 두고 일본으로 왔다. 손에 물집이 생기도록 풀베기를 했고 월급을 제대로 못받으면서도 김치가게에서 일했다. 그래야 밥한끼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생활이 안정될 무렵 새마을부인회를 만든 뒤 주변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제주시 연동 삼무공원에 팔각정을 지어줬다. 그때 바나나 열세상자를 보냈던 기억도 있다.

▲오사카의 이쿠노쿠도서관에는 한국·조선 도서코너가 있다.

김길호씨는 재일동포들이 품은 수많은 사연에 늘 귀를 기울인다. 가라오케를 운영하는 여인이 재일동포 사회에서 느끼는 이질감을 다룬 '몬니죠'라는 소설도 '이쿠노 아리랑'처럼 실제 모델이 있다. 껍데기만 보고 재일동포의 삶을 이해하려는 한국 독자들에게 그의 소설은 속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고 있습니다.

/오사카=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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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1 개)
이         름 이   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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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백조 2008.09.13 (12:13:40)삭제
진선희 기자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조센이치바의 골목에서 언뜻언뜻 들려오는 한국말, 그리고 제주어가 생생한 기사입니다. 자전거를 끌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제주도 삼춘들과 인사를 나누며 지나는 작가의 모습도 소탈하게 느껴집니다. 진선희 기자님의 좋은 기사, 앞으로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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