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염쟁이 유씨'가 남긴 이야기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염쟁이 유씨'가 남긴 이야기
  • 입력 : 2008. 10.14(화) 00:00
  • 진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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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문화본부 뜻깊은 행보…이어도 30주년 공연 지원…지방 연극 성공 후원자로


"죽는 거 두려워들 말라고. 잘사는 게 더 어렵고 힘들어. 죽는 건 생명이 끝날 뿐이지, 인연이 끝나는 건 아니야."

시신을 앞에 두고 염습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깔깔대며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 웃음이 뚝 그쳤다. 그가 온 정성을 다해 생애 마지막으로 염을 한 사람이 누구라는 걸 알았을 때 눈에 물빛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은 여성 관객은 손수건을 꺼내 조용히 눈물을 닦아냈다.

지난 11일 저녁 문예회관 대극장. 1인극 '염쟁이 유씨'가 그 날 제주에 왔다. 듣던 대로였다. 나이 마흔다섯의 배우 유순웅은 70대 염쟁이에서 어린 아이까지 혼자서 열다섯가지 배역을 소화해냈다. 1시간 30분 남짓, 염쟁이 유씨는 관객에게 시종 말을 걸었다. 무대에 불이 켜진 순간부터 관객은 염하는 모습을 보러온 전통문화 체험단이 되어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객석의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연극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네 인생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는 올 한해 제주도문예회관을 찾았던 몇몇 초청 공연에 견주어 이 작품을 우뚝하게 만들었다.

유순웅씨는 충북 청주에서 활동하는 연극 배우다. '염쟁이 유씨'는 2004년 5월 청주의 어느 소극장에서 처음 공연됐다. 이듬해 서울연극제에서 인기상을 받으며 주목을 끈 이 작품은 서울 대학로로 '상경'한다.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청주,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 무대를 누비며 장기공연중이고 지난 주말엔 초연 이래 처음으로 제주를 찾았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유순웅씨는 관객들에게 짤막한 인사말을 전했다. '염쟁이 유씨'를 보러 오듯 지방연극 무대를 많이 찾고 아껴달라고.

5개월전쯤 이 지면을 통해 '염쟁이 유씨'가 제주에서 공연된다는 소식을 다루면서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우수 작품에도 애정을 품어달라고 한 적이 있다. 제주에서도 '염쟁이 유씨'같은 작품을 키워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이다.

20년째 문예회관을 운영해온 제주도문화진흥본부가 먼저 움직였다. 다음달 8~9일 선보이는 극단 이어도의 창단30주년 기념 창작극 '소원풀이'공연을 공동 주최한다. 기관의 한해 예산이 이미 확정된 후 뒤늦게 추진된 사업이라 직접적 지원은 불가능하지만 공연장 대관료 면제, 홍보, 연습공간 제공 등에 적극 나선다. 극단측은 든든한 후원자를 얻었다며 이제 좋은 무대를 만들어낼 일만 남았다고 했다.

창작공연에 도문화진흥본부(옛 도문화진흥원) 지원이 이루어진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지역에서 창작되는 작품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이 지속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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