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소극장 축제, 길을 잃다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소극장 축제, 길을 잃다
  • 입력 : 2008. 12.16(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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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배우 없는 어떤 연극 '작품 완성도'가 우선일까
두 극단 공연 일정 중복도


손을 뻗으면 배우의 얼굴에 가닿을 것 같았다. 그와 그녀로 분한 이들이 무대 위에서 껴안은 고통을 기껍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공간. 소극장은 그런 곳이다. 연극협회제주도지회는 12월이면 소극장 연극축제를 연다. 연극 동네가 어렵다고 하지만 소극장 축제는 오래도록 이어져왔다. 올해로 17회째다.

지난 7일, 제주시 중앙로에 있는 미예랑소극장을 찾았다. 소극장 축제의 출발을 알리는 극단 정낭의 '소주 그리고 오징어'가 무대에 올려졌다. 바깥 날씨는 시렸지만 작은 무대, 아담한 객석의 온도는 몸을 녹여줬다. 무대에 등장한 3명의 젊은 배우는 풍자와 유머를 섞으며 우리 사회의 풍경을 그려갔다.

그런데 배우들이 낯설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의문이 풀렸다. 이번 작품을 위해 불러들인 다른 지역의 배우였다. 대학 휴학생도 있고 극단에서 활동하는 배우도 있다고 했다. 이유는 짐작이 됐다. 2~3명의 출연진이 등장하는 제주 연극이 유독 많은 것은 무대에 오를 배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단원이 없는 극단도 있다. 연출자의 대답 역시 그랬다. 제주엔 배우가 몇사람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좋은 배우를 쓰고 싶었다는 말도 했다.

소극장 연극축제는 지역 극단이 선물처럼 풀어놓는 송년 무대다. 토박이 연극인들은 한 해를 보내며 공연 한편 만날 수 있는 쉼표를 찍어줬다. 극단의 역량을 경쟁하듯 내보이면서 말이다. 지금은 예전같지 않다. 무대도, 객석도 시들하다.

정낭 극단은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여줄 '좋은 배우'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좋은 배우가 있으면 작품 완성도가 높아지고 연극을 찾는 관객들도 늘어날 거라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논란거리다. 이번처럼 출연진의 전부가 다른 지역 배우인 경우엔 더욱 그렇다. 형편이 어렵다고 바깥에서 마냥 인력을 끌어오기 시작하면 제주 연극이 혼자 설 수 있는 시간은 자꾸 미뤄진다. 지역에서 좋은 배우를 키우기 위해 연극인들이 그만한 품을 들였던가 하는 반문도 나올 수 있다.

이제 소극장 연극축제는 두 편의 작품을 남겨두고 있다. 극단 세이레의 '두 번 한 일, 세 번이라고 못해!'와 이어도의 '절대사절'이 이달말 무대에 올려진다. 두 작품은 소극장 연극축제에 참가한 '소주 그리고 오징어'나 극단 가람의 '가시고기'와 달리 도문예진흥기금 지원없이 무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유감스럽다. 일정 때문이다. 두 작품이 같은 날 공연된다. 가뜩이나 관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 연극계에서 두 극단이 똑같은 날짜에 작품을 선보이는 게 괴이쩍다. 연극협회제주도지회가 지역 극단의 뜻을 모아 치르는 소극장 연극축제가 자꾸 뒷걸음질 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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