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 기자의 문화 현장]댓잎 소리에도 그날의 기억

[진선희 기자의 문화 현장]댓잎 소리에도 그날의 기억
  • 입력 : 2009. 04.14(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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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미술제 성과 보였지만
새 이야기· 매체 등 한계
비회원 출품 기회 확대를


아이는 그것이 주검인 줄 몰랐다. 사람들이 땅에 엎드려 잠든 것인 줄 알았다. 할머니가 아이의 두 눈을 황급히 가렸다. 60여년이 지나 그 아이는 반백의 어른이 되었다. 그 때의 죽음이 무엇이었는지 아는 나이가 됐지만 그에게 4·3은 한낮의 거리에 잠들어있던 것 같은 어른들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4·3에서 멀찍이 비켜설 수 있는 제주사람은 없을 것이다. 할머니, 아버지, 삼촌, 조카가 그 때 죽었다. 누군가는 침묵하고 있을 뿐, 마음에 커다란 상처 하나씩은 안고 산다. 그 상처의 모양새는 한 가지가 아니다. 수 천명이면 그 수 천명이 저마다 다른 빛깔의 기억을 품고 있다.

지난 3~8일 문예회관에서 열린 탐라미술인협회의 4·3미술제를 찾았다. 4월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했던 시절부터 4·3을 미술에 담아온 이들이 마련한 전시였다. 16회를 이어오는 동안 수백점의 작품이 4월을 품었다. 말로 다할 수 없었던 그 날의 울림은 예술적 표현이라는 장치를 통해 숱한 관람객에게 감동을 안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있다. 자칫 동어 반복이 되고 있지 않은가하는 우려다. 거기다 몇몇 작품에서 보이는 노골적인 '메시지'는 다소 불편했다. 무고한 이들의 죽음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다양한 사연과 매체로 새로운 국면의 4·3을 담아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거대 서사'에 갇혀있는 것은 아닐까. 4·3의 불바다를 건너온 사연이 하나가 아니라면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도 한 가지가 아닐 터다.

가족들에게 들었던 4·3 이야기가 쉬 잊혀지지 않는다는 젊은 작가가 있다. 댓잎이 서걱이는 소리는 한없이 평화로운 느낌을 전해줄 법 하지만 4·3을 경험한 이에겐 다르다. 죽음을 피해 숨어들었던 곳에서 들었던 대나무 소리는 공포였다. 흡사 그것이 대숲을 헤치고 그를 죽이러 오는 발자국 소리가 아닐까 싶어서다. 젊은 작가는 언젠가 4·3을 작품에 담을 기회가 오면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했던 그 '소리'를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4·3미술제가 끝나고 문예회관 전시실에 걸린 몇몇 작품에서 4·3을 읽었다. 홍진숙씨는 몇해전 4·3 유적 답사길에 만난 애기무덤의 사연을 목판화 '그 자리'에 실었다. 제주도예가회 정기전에는 최대언씨가 혼합토로 '제주4·3의 한'이란 도자기를 빚었다. 제주땅과 인연을 맺고 사는 작가들이라면 그렇듯 바람부는 섬의 풍경처럼 4·3을 늘상 맞닥뜨린다.

지난해 4·3 60주년 4·3미술제 심포지엄에서는 이 전시를 도내외 범미술인이 연대한 국제평화인권미술제로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있었다. 탐라미술인협회 회원만이 아니라 4·3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려는 작가에게 문을 열어두었으면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4·3미술제가 그간의 성과를 이으면서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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