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 기자의 문화현장]'오래된 미래'를 새기는 섬

[진선희 기자의 문화현장]'오래된 미래'를 새기는 섬
  • 입력 : 2009. 07.14(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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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현 다케토미섬
가옥· 돌담길 옛 그대로
전통에서 생존의 길 찾아


먹빛 물소가 이끄는 달구지에 몸을 실었다. 물소는 달팽이가 걸음을 옮겨놓듯 쉼표를 찍으며 발을 내디뎠다. 우차를 안내하는 20대의 청년은 되레 물소의 걸음이 빠르다며 미안해했다.

오키나와의 외딴 섬중 한곳인 다케토미지마(竹富島). 이달초 그 섬을 찾았다. 오키나와현청이 있는 나하에서 비행기로 이시가키에 간뒤 그곳에서 배를 타고 10분 남짓 걸려 섬에 다다랐다. 섬은 온도계 눈금이 가파르게 오르는 중이었다. 그래도 땡볕 아래 자전거를 끌고, 소달구지를 타고 섬을 순례하는 이들이 끊이질 않았다.

흔히 '섬 속의 섬'으로 불리는 제주의 우도, 마라도처럼 보이지만 그들과는 빛깔이 다르다. 오키나와현의 160개 섬 가운데 유인도가 40개. 그들이 그려내는 삶의 풍경은 또다른 나라의 모습에 가깝다.

다케토미지마는 우리식으로 하면 민속마을 같은 곳이다. 붉은 기와, 석회암 돌담 등 오래된 모습 그대로다.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길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제주섬이 겹쳤다.

나가사키 출신으로 섬의 매력에 반해 다케토미섬에 둥지를 튼 우에세도 요시노리씨. 자료관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제주 사람들을 만나자 대뜸 "다케토미지마도 돌, 바람, 여자가 많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섬에 사는 사람은 360명이 조금 넘는다. 이중 초등학생이 30여명된다. 전체 인구의 10% 가량되니 그리 적은 숫자는 아니다. 전통가옥 보수 등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다.

주변에 흩어진 섬에 비해 다케토미지마는 땅이 척박했다. 농사가 잘되고 살림이 폈다면 전통가옥을 허물고 그 자리에 현대식 건물을 지어 올렸을지 모른다. 궁핍한 삶이 섬의 미래를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1987년 섬의 일부가 중요전통적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된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흘렀다. 1년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40만명. 섬 사람들의 머릿수를 헤아리면 다케토미지마에 쏠리는 이방인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우에세도 관장은 "너무 많은 관광객이 오는게 싫다"고 했다. 섬을 망칠까 싶어서다. 그만이 아닐 것이다. 섬 사람들의 하루는 마을 길을 청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행여 집 앞이 흐트러져 있으면 그 집 주인을 찾는 확성기가 마을에 울린다. 아스팔트가 아니라 옛 사람들이 그랬듯 산호모래를 깔아놓은 마을길이 새하얗게 반짝이는 것은 24시간 섬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게다.

북위 24도, 동경 124도, 평균기온 24도, 연강우량 2400㎜, 24번째 마을 보존지구 선정 지역 등 숫자 '24'와 인연이 깊은 섬을 나오면서 성읍을 떠올렸다. 성읍민속마을은 이 섬보다 앞선 1984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됐다.

전통은 '낡은 문화'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임을 알아챈 다케토미지마는 섬을 떠났던 젊은이들이 귀향하는 섬이 되었다. 그 섬엔 빈 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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