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귀포시 기당미술관을 찾은 가족 관람객들이 황토빛 화면이 인상적인 '폭풍의 화가' 제주출신 변시지 화백의 작품이 걸린 상설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강희만기자
재일동포 사업가 강구범 건립한 국내 첫 시립미술관변시지 '제주화'상설 전시…미술관 색깔찾기 갈림길
"기당이 변시지 화백의 홉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아니다."
기당은 작고한 재일동포 사업가 강구범 선생의 아호(雅號)다. 서귀포시 서홍동에 들어선 기당미술관. 원로 변시지 화백의 작품이 상설전시되고 있는데다 그가 명예관장을 맡고 있어 진작부터 그런 물음이 많았다. 더러 기당이 변 화백의 호를 따 지어진 이름으로 잘못 알고 있는 미술인도 있다.
1987년 7월 1일 문을 연 기당미술관은 전국 최초의 시립미술관이다. 법환동 출신인 기당은 고향 서귀포에 대한 애정을 실어 미술관을 지었다. 지금과 달리 제주시에도 공립미술관이 없던 시절, 기당은 그렇게 서귀포에 문화의 시대를 연 것이다.
한라산이 눈에 걸리는 삼매봉 자락에 세운 기당미술관은 제주지역에 현대미술의 흐름을 소개하겠다는 계획 아래 작품을 모았다. 국내외 작가들의 회화, 조각, 공예, 판화, 서예 등 미술관 소장품은 8월 현재 640점이 넘는다. 김기창 장우성 서세옥 송수남 민경갑 박노수 장리석 박서보 김원 이대원 등 국내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갖췄다. 이들 작품은 매년 서너차례 주제를 바꿔가며 관람객들에게 선보인다.
상설 전시실은 모두 2개로 꾸며졌다. 한 곳은 변시지 화백의 작품으로 채워지고 있다. 또다른 한 곳엔 기당과 형제사이인 서예가 강용범의 행초서 유작 등이 놓였다.
이중 서귀포 출신인 변시지 화백의 상설전시실은 기당미술관을 대표하는 공간이다. 변 화백은 일본에서 청년기를 보낸 뒤 서울을 거쳐 중년의 나이에 제주섬으로 돌아온다. 다시 찾은 남국의 고향에서 그는 낭만적이며 토속적인 풍정을 새로이 발견한다. 꾸들꾸들한 황갈색 화면 위에 흩어진 바다, 조랑말, 초가, 검은 돌담, 바람, 까마귀 등은 그렇게 탄생했다.
전시장에는 주로 1980년대에 그려진 '제주화' 20여점이 걸렸다. 파도가 할퀸 듯한 제주 풍경은 섬에 깃들어사는 이들의 운명을 조용히 일깨운다. 변 화백은 지금도 1주일에 두세차례 미술관으로 걸음한다.
기당의 흉상이 맨 처음 관람객을 맞이하는 미술관은 지금 변화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한해 관람객이 7800명에 그칠 정도로 미술관으로 향하는 발길이 뜸하다. 지난 20여년간 시대는 바뀌었지만 미술관은 여전히 '낡은 목표'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기당미술관만의 색깔을 찾지 못한 채 막연히 현대미술을 붙들어왔고, 자치단체의 인력이나 예산 지원 역시 소극적이었다.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이중섭미술관 등에 견주어 일찍이 건립되었음에도 부진한 이유를 되새겨볼 때다.
오는 2010년 12월쯤이면 서귀포종합문예회관이 완공돼 미술관 인근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기당미술관에겐 좋은 기회다. 도립미술관 시대에 '작은 미술관'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운영계획이 필요해보인다. 미술관의 성격, 소장품 수집 방향 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오전 9시부터 밤 8시까지 운영한다. www.gidang.or.kr. 733-1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