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드라마속 제주를 그린다면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드라마속 제주를 그린다면
  • 입력 : 2009. 08.11(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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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배경 '탐나는 도다'
제주 역사·문화 배인 작품
관련자료 자문할 장치 필요


"탐라에서 태어나믄 좀(ㅈ+아래아 ·+ㅁ)녀가 되는 게 당연한거 몰람시냐?"

주말드라마에서 제주어가 흘러나왔다. 물소중이 입은 '상군' 해녀가 역시 그처럼 물질을 하는 어린 딸에게 던진 말이었다.

지난 8일부터 시작된 '탐나는 도다'를 '본방사수'했다. 17세기 제주를 배경으로 취했다는 드라마 홍보를 기억하던 터였다. 궁금증을 안고 황금시간대 채널을 그 작품에 온전히 맡겼다.

우리에게 귀익은 이름인 네덜란드인 하멜의 제주 표착에서 모티브를 따온 드라마엔 구비구비 파고를 넘나든 제주섬의 역사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유배의 땅, 바다를 헤쳐가는 이들이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표류, 깊디깊은 물속을 자맥질해 전복을 캐내 임금께 진상해야 했던 해녀의 고단한 일상 등이 극 초반부 이야기를 가로질렀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그것들이 심각하게 그려지진 않는다. 하지만 제주사람들이 살아온 내력에 조금이라도 눈길을 둬본 이들이라면 등장 인물의 대사나 몸짓에서 섬이 지나온 세월이 읽힐 듯 하다. 고통스러웠던 삶은 수백년전 그때처럼 원시적 풍경-컴퓨터그래픽 기술을 빌린 장면도 있지만-이 살아있는 눈부신 섬의 자연과 어울려 묘한 대비를 이룬다.

지난해 여름과 겨울 제주에서 촬영된 '탐나는 도다'는 여느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제주어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더러 자막처리때 '아래아' 표기를 소홀히 하긴 했지만 '속솜허다(아무말도 않고 입을 다물다)'처럼 '육지'에 대중화되지 않은 어휘가 여럿 등장했다. 여주인공의 어머니로 나온 배우의 제주어 구사도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제주사람들로선 억양은 둘째치고 제주어가 종종 팔도 사투리로 둔갑해버리는 몇몇 인물의 대사에 귀가 거슬릴 듯 하다. 아쉬움이 남는다.

그동안 제주에서 촬영된 드라마나 영화는 숱하다. 제주 촬영을 진행하고 있거나 예정된 작품도 잇따르고 있다. 지자체는 드라마나 영화가 지역을 알리는 대단한 홍보 효과를 거둘 것이라며 세트장을 지을 때 환경영향평가 등에 너그러웠다. 반면 그렇게 아낌없이 지원했던 작품들이 초기의 바람대로 성과를 거두었을까를 셈하는 일에는 인색했다.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제주를 어떻게 알릴까 궁리한다면 방법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세트장을 짓는 일보다 제주의 정서를 품은 작품 제작과 지원에 공을 들이는 게다. 드라마나 영화가 상상력을 일구는 공간이긴 하지만 촬영지의 풍토가 자연스레 배어나기 마련이다.

이번 드라마처럼 제주의 역사나 문화가 적지않이 녹아들 작품이라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관련 자료를 자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허구의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실제 '탐나는 도다' 제작진이 제주어 연구자에게 대본 감수를 의뢰했는데 주어진 시간이 짧아 고사했다는 후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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