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문학관, 무엇부터 시작할까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문학관, 무엇부터 시작할까
  • 입력 : 2009. 08.25(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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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건립추진위 구성
대규모 박물관 구상 보다
지역작가 조명·발굴부터


"버스 정말 늦게 온다. 여기? 김유정. 곧 온다는데 아직이네."

열차역 가는 길에 코스모스가 피어났지만 계절은 한여름이었다. 1시간에 한번 꼴로 도심으로 향하는 버스가 있는 곳. 손바닥만한 그늘에 의지해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일은 고역이었을 게다. 버스 정류소에 삼삼오오 모여든 여학생중 한 명이 친구와 통화하며 투덜댔다.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 아이들이 '김유정'으로 줄여부른 그곳에 김유정문학촌이 있고, 김유정역이 있다. 널리 알려졌듯, 김유정역은 당초 신남역으로 불렸다. 1939년 경춘선 개통과 함께 줄곧 써오던 그 이름이 2004년 12월 1일부터 바뀌었다. 역이 있는 실레마을에서 태어난 김유정을 기리자는 지역 문인들의 줄기찬 요구가 있어서다.

김유정역에서 5분쯤 걸어 도착한 김유정문학촌에서 충북 제천에서 왔다는 중학교 남학생들을 봤다. 1~3학년 문예반 학생들이 이곳으로 나들이 왔다고 했다. 아이들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종이위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며 한낮의 더위를 잊고 있었다.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국어책에 나오는 그 김유정이냐"며 '감격어린' 표정으로 동상을 매만지고 실내 전시관을 둘러보는 관람객들을 만났다.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봄봄',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은 그렇게 세월을 거슬러 살아나고 있었다.

김유정문학촌에 앞서 발길을 돌렸던 곳은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의 박경리문학공원. 박경리 선생이 1980년부터 1998년까지 20년 가까이 머물면서 대하소설 '토지'의 4~5부를 집필한 곳이다. 주인은 이 땅을 떠나고 없지만 그의 문학에서 '구원'을 얻은 이들의 순례는 끊이지 않고 있었다. 토마토와 고추가 익어가고 봉숭아가 울타리에 피어난 옛 집의 나무 그늘 아래 오종종 모여든 중년 여성들을 봤다.

얼마전 강원도에 있는 몇몇 문학관을 찾아나선 일이 있었다. 물어물어 다다른 그곳에서 경주의 동리목월문학관에 들렀던 작년 여름처럼 문학관 없는 제주의 현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다행히 지난 4월 제주도가 건립추진위원회를 꾸리긴 했지만 제주에서 생겨나는 문학관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에 대해선 이제부터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참이다.

일각에서 여느 문화공간에 있는 시설을 두루 갖춘 문학관 조성을 주장했던데 바람직한 일일까 싶다. 이미 그런 시설은 충분하다. '종합문학관'이란 이름으로 여러 소재의 제주문학을 일별하겠다는 생각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보다 제주를 온전히 품은 작가를 조명하고 발굴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짓듯 대규모 인프라 구축 사업으로 문학관을 건립하겠다는 구상을 염려한 얘기다.

문학의 현장을 떠난 문학관은 공허해보인다. 김유정문학촌이든, 박경리문학공원이든 전국에 흩어진 여러 문학관중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는 곳은 열에아홉 작가와 작품에 얽힌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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