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함께뛰자! 희망제주!]골목, 그곳을 탐하다-(1)칠성로

[신년특집/함께뛰자! 희망제주!]골목, 그곳을 탐하다-(1)칠성로
'제주의 명동' 옛 시절 추억하고 새로운 변화 꿈꾸네
  • 입력 : 2014. 01.01(수) 00:00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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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탐방의 출발지는 칠성로다. 사진은 칠성로 아케이드 상점가. 김지은기자

골목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익숙한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게 특별하지 않다.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은,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시대다.

거센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삶은 이어져 왔다. 오가는 사람들이 있는 도심과 마을 골목골목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쉼 없이 흐른다. 누군가에겐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도, 어떤 이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도 여전히 그곳에 머문다.

삶이 흐르는 제주의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본다. 침체된 골목을 살리려는 움직임, 낯선 골목에 새롭게 자리 잡은 사람들 이야기, 그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개발과 다양한 변화 등을 담아낼 것이다. 당장 눈앞에 잡히는 게 없을지라도 이러한 얘기들이 우리네 골목 안에서 더 나은 삶을 고민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다. 그게 바로 골목을 탐하는 이유다.

#옛 기억 속 칠성로와 지금

제주시 일도1동에 위치한 칠성로는 '제주 상권의 원조'다. 도내 최초의 다방과 백화점 형태의 대형 매장이 입점한 곳도 칠성로였다. 1976년~1990년도 제주시 연동신시가지·일도지구 택지개발과 아파트 신축 붐으로 인구가 이동하고 중앙 지하상가의 설립으로 상권이 분산되기 전까지만 해도 칠성로는 '제주의 명동'으로 불리며 최대의 호황을 누렸다. 문인 최현식이 '어깨로 걷는다'고 했을 만큼 사람들로 북적였다.

'패션 1번지' '제주의 명동'이란 명성은 옛일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상권이 여러 곳으로 나눠지면서 신흥로(금강제화~옛 코리아극장)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다. 제주감귤농협중앙지점 부근 상점가는 상황이 심하다. 군데군데 문을 닫은 점포가 여럿 눈에 띈다.

산지천 광제교 근처 칠성로길에 자리잡은 양장점 보구패션. 현재 칠성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양장점이다. 남편과 함께 40년간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백운자(63)씨는 "1970년대만 해도 양장점, 양복점, 금은방 등이 넘쳐나는 거리였다. 근처에 제일극장이 있어서 사람들이 더욱 붐볐다"고 칠성로의 전성기를 떠올렸다.

"지금에야 양장점이 우리 가게 하나뿐이지만 그때만 해도 상당히 많았어. 옷을 맞춰 입던 시대니까. 옛날에는 옷을 해 입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도 있었지. 남편이 손기술이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고. 가게가 잘 나갈 때는 직원이 7~8명이었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양장점은 나름 장사가 잘됐다. 맞춤옷을 입는 인구가 줄어들고 일대의 상권이 침체되면서 골목을 가득 메우던 양장점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나마 백씨네 보구패션이 명맥을 지키고 있다.

"거리가 죽으니까 마지못해 상가를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 우리의 경우야 옷 수선하고 가끔식 맞춤옷 하나씩 제작하고 하면 벌이가 있지만 집세도 안 나오는 곳이 상당해."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사람들

과거의 호황은 '좋았던 시절' 얘기로 전해지지만 사람들은 칠성로의 과거를 추억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다. 임상규(35)씨와 현지연(29) 부부도 그 중의 하나다. 2011년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온 이들은 칠성로 한 구석에 '더 아일랜더 여행사&제주 아트샵'의 문을 열었다. 남편 임씨가 여행사를 운영하고 현씨가 아트숍을 맡고 있다. 올해 11월에 시작한 여행사 겸 아트숍 곳곳에는 '제주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기념품이 가득하다.

"사무실을 얻을 생각에 여러 곳을 둘러봤어요. 신제주 쪽도 생각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시 느낌이 강했죠. 그에 반해 칠성로는 거리도 예쁘고 옛도심 분위기가 좋았어요." 이들 부부는 그렇게 칠성로에 정착했다.

갓 자리를 잡은 만큼 그들은 칠성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지만 아쉬움도 크다. "외국인들이 제주로 배낭여행을 오면 칠성로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많이 묵어요. 공항이나 시장과 가깝기 때문이죠. 그런데 다들 이곳엔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없다고 합니다. 흑돼지 골목이 있긴 하지만 거리 대부분이 브랜드숍으로 가득 차 있으니 다양한 즐길거리가 부족한 거죠."

원도심 걷기 행사에 참여했었다는 이들은 "골목의 옛이야기를 잘 살리면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여행객들이 로마에 가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잖아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영화 '로마의 휴일')스토리를 담으니 사람들이 모이는 거죠. 원도심 지역을 둘러보니 스토리화하면 좋을 것 같은 얘기들이 많았어요. 이것들을 잘 살리면 외국인 관광객에게 새로운 볼거리가 될 것 같아요."

칠성로 활성화를 고민하는 청년들의 움직임도 반갑다. SNS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칠성통 키즈 모여라' 모임은 친목 도모는 물론 지역 활성화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칠성로 토박이들과 갓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선 칠성로를 문화·예술의 거리로 만들어 활성화하는 방안이 오고가기도 했다.

#"골목 개발 신중히 고민해야"

지자체 차원에서도 침체된 상권을 살리기 위한 작업을 지속해 왔지만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주시는 칠성로에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영화의 거리를 조성했지만 사람들의 발길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건축가 김석윤(69)씨는 조급한 사업 추진을 문제로 꼽으며 "성급하게 하지 말고 오랜 시간 깊이 있게 고민한 뒤에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며 "한꺼번에 묶어서 하는 것보다 작게 나눠야 한다. 그래야 위험성이 작아진다"고 조언을 덧붙였다.

김씨의 말을 듣고 있자니 한 상인의 얘기가 떠올랐다. "저기(탐라문화광장 조성지) 음식점 거리다 뭐다 생긴다고 하는데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어. 잘 되면야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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