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그곳을 탐하다](12)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골목, 그곳을 탐하다](12)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에메랄드빛 바다 품에서 공존을 꿈꾸다
  • 입력 : 2014. 07.31(목)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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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구좌읍 월정리해변은 고즈넉한 백사장과 해안가 풍경을 여유롭게 음미할 수 있는 제주의 대표적인 곳이다. 김지은기자



몇 년 전부터 제주에 정착하는 '육지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다른 시·도에서 제주로 전입한 순유입 인구가 올해 상반기에만 5233명이었다.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작년 한 해 순유입 인구 7824명의 66.9%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주 열풍이 불면서 제주의 풍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다.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한 동네 골목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난다.



#달이 뜨는 아름다운 해변, 월정

구좌읍 월정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400년 전이다. 마을 서쪽 해안에 생활용수가 풍부한 송포(소낭개)에서 생활하던 김해김씨가 몇십 년 후에 지금의 마을에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주민들에 따르면 월정(月汀)이라는 마을 이름은 마을 모양이 반달 같고 바닷가에 접해 있다는 뜻으로 '달이 뜨는 바닷가'라는 의미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은 대대로 자연을 터전 삼아 삶을 이어왔다. 밭에서 양파와 마늘, 당근을 재배하거나 바다에서 소라와 해초를 채취하는 것이 생계수단이었다.



#5년 새 '카페 촌'으로

마을의 변화는 우연찮게 시작됐다. 2010년 4월 육지 출신 세 여자가 카페 '아일랜드 조르바'의 문을 열면서다. 얼핏 보면 가정집처럼 소박한 공간이었지만 이곳으로 인해 월정해변은 유명세를 타게 됐다. 카페 앞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와 백사장의 사진이 블로그 등을 통해 퍼지면서 사람들은 월정으로 모여들었다.

카페를 만들 때 함께했던 가비야씨는 "카페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월정리 바다의 아름다움이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바다를 낀 시골 마을은 5년 새 몰라보게 달라졌다. '고래가 될'로 이름을 바꾼 옛 아일랜드 조르바 양옆으로는 카페가 하나 둘 늘어났다. 월정리 풍광에 반해 자리를 옮겨온 외지인들은 골목으로 스며들었고, 마을 안쪽에도 그들이 만든 아기자기한 커피숍, 게스트하우스 등이 문을 열었다. 300가구가 채 안 되는 마을에는 현재 일반음식점 12곳, 휴게음식점(커피숍 포함) 9곳, 민박(게스트하우스 포함) 19곳 등이 영업 중이다.

한적했던 바다에는 사계절 사람들이 모여든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모래사장이 더욱 붐빈다. 지난해부터 마을 청년회가 튜브, 돗자리, 선탠의자 등을 대여해 주는 사업을 시작했을 정도다. '아는 사람만 알았다'던 월정해변은 그야말로 '핫 플레이스'가 됐다.

제주 이주 열풍에 시골 골목 풍경 변화
구좌읍 월정리 5년 사이에 카페촌으로
유명세 뒤에 외지인-토박이 간극 발생
외지인·상인연합회 꾸려 소통 나서기도


#마을 전체가 들썩… 이주 열풍 그림자

유명세의 이면에는 그림자도 있다. 새로운 사람이 들면서 땅값이 들썩이고 있다. 올해 초 월정리의 한 단독주택 입찰 경쟁률이 152대 1을 기록하며 역대 경매 최고 기록을 13년 만에 갈아치웠다. 대지면적 274㎡에 연면적 63㎡인 해당 주택의 낙찰가는 감정가(3600만원)의 두 배가 넘는 8520만원이었다. 한 이주민은 "육지에서 내려와 월정에 정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땅값이 3.3㎡에 500만원이라는 (믿지 못할)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마을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없다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밭일과 바닷일을 업으로 삼는 주민과 장사를 하는 이주민들의 보이지 않는 간극도 생기고 있다. 주민 한모(36)씨는 "월정리가 유명해지면서 장사를 하는 외지인들에게는 이득이 있겠지만 농·어업으로 먹고 사는 주민들에게 좋은 점이 없다"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다보니 쓰레기 무단 투기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외지인·토박이 공존의 삶을 꿈꾸다

월정리의 변화가 아쉽기는 이주민의 한 명인 유영규(58)씨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가 몇 안 되던 2008년 유씨는 월정리 입구에 '소낭게스트하우스'를 차렸다. 당시만 해도 유씨는 월정리에 거의 유일한 '육지 사람'이었다.

유영규씨는 "'알려진다'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바뀐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마을 지형이나 자연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이 들어서는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까. 최근에는 토박이와 외지인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월정에서 카페, 게스트하우스 등을 운영하는 외지인들이 모여 상인연합회를 꾸린 것이다. 친목 도모 형식으로 만들어 졌지만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함께 찾아보자는 게 모임을 결성한 주된 이유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해안도로를 청소하는 것은 물론 마을 대소사가 있을 때 참여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유씨는 "젊은 이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에 나서고 있다"면서 "마을 안에서 나 혼자만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주민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삶을 존중하면서 가까워지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이주민들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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