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새 신을 신고

[하루를 시작하며]새 신을 신고
  • 입력 : 2016. 04.13(수) 00:00
  • 편집부 기자 su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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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거나 지거나 벚꽃 세상이다. 하늘에는 핀 꽃, 땅에는 진 꽃으로 온 데가 환하게 만발한데 어쩔 수 없이 슬픈 봄이다. 아이는 오늘, 새 신을 샀다. 그 신을 신고 꽃길로 나섰다가 하늘 길로 영영 떠난 아이들의 2주기가 낼모레다. 슬픔을 '딛고'라는 말은 '이겨 내다'이지 '잊고'가 아니다. 참척(慘慽)을 어떻게 잊는가. 제주의 사월은 이래저래 슬플 수밖에 없겠다. 얼마 전 바다에서 돌아온 유품들이 햇볕을 쬐고 있는 그림을 보았다. 소금기 절은 운동화가 끈 묶인 채로 벗겨져 주인 없이 떠돌다 저만 말갛게 씻겨 빨랫줄에 걸려 있다. 눈앞에서 무참하게 아이들을 수장시키고 이태가 지나도록 별달리 한 일 없이 또 봄이 왔다. 환한 벚나무를 넋 놓고 바라보다가 문득 그 아이들과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꽃 내리는 나무 사이에 고무줄을 걸어놓고 '장난감기차'와 '아기염소'를 부르며 팔랑팔랑 뛰어보고 싶다. 길게 늘어선 가로수에 칸칸이 고무줄을 매어 한 줄로 서서 하는 고무줄놀이는 어떤가. 목청 돋운 떼창(唱)과 아이들의 발랄한 발놀림. 상상만으로 벅차다. 나는 고무줄놀이를 해 본 적이 없다. 바깥놀이보다 집에서 조용히 달싹거리는 게 더 좋은 아이였다. 그럼에도 이제와 참 철딱서니 없게도, 떨어져 바닥을 가득 메운 벚꽃잎을 보면 그 위를 팔랑거리며 밟고 싶어 발바닥이 근질거린다. 아마 몇 발짝 뛰면 할딱거리며 맥없이 주저앉을 텐데 앉아 쉬다가, 발갛게 상기된 아이들의 풀린 머리 끈이랑 신발 끈을 질끈 묶어주고 싶다. 벚꽃 아래 잠시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런 상상을 하다가 어지러운 꽃무늬가 흐리다.

최근에야 앵클부츠 굽을 갈았다. 닳아서 딸각거리는 것을 며칠 그냥 다녔더니 허리가 아프다. 이미 벚꽃망울은 막 터질듯 잔뜩 모여 있었지만 발등을 내놓기는 아직 시리다. 근처의 볼일과 엮느라고 평소 가던 구둣방의 건너편으로 갔다. 걸음 탓인지 매번, 내 구두코는 제일 먼저 쉬 깨진다. 얇게 덧대 붙여 바닥을 올리면 좀 낫다고, 겨울 초입에 건너편 아저씨가 해 주셨다. 신 바닥을 뒤집어 보더니 헤이! 하고 웃으신다. 내 눈에도 밑창 그대로 꽉 차지 않게 잘린 호박씨처럼 덧대지는 게 좀 이상했지만, 그냥 맡기자고 지나쳤던 일이다. 마땅치 않아 혀를 끌끌 차시더니 묵묵한 손끝으로 굽을 갈고 윤나게 닦아주시기까지 하셨다. 배려가 새 신처럼 반짝인다. 발걸음이 가볍다. 쉬운 갈림길에 섰을 때, 이를테면 낯선 음식점에서 뭐가 맛있냐고 주인에게 묻는 우문이 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그쯤에 상대를 믿고 기대어 보는 마음이 담긴다. 한번 정하면 잘 바꾸지 않는 대신, 한끝에 마음 잘 고쳐먹는 나로선 생무지를 걱정시키지 않을, 믿고 맡겨도 좋을, 마음 닿는 그 곳을 찾을 것이다.

이태 여름은 젤리슈즈를 줄곧 신었다. 인터넷에서 고른 착한 가격의 신형 고무신이다. 밑창이 얇아서 몸에 충격을 줄까 했지만, 발에 감기는 고무의 부드러움이 편안하고 가벼워서 맨발로 다니는 것처럼 좋았다. 게다가 예쁘기까지. 그러고 보니 연말에 선물 받은 구두상품권이 그대로 있다. 날씨가 조금 더 따뜻해지면 상품권은 접어두고라도 우선 그 신을 사서 신을 생각이다. 색깔까지 똑같이 그대로.

아침에 신발장을 열어본다. 무얼 신을까. 햇빛이 좋은데 이제 발목을 드러내도 좋겠다. 가벼운 신을 신고 사뿐사뿐 경쾌하게 걷고 싶다. 발등에 떨어져 눕는 꽃잎이 오래도록 아픈 문신되어 박히겠지만, 꼭꼭 딛고 걷기로 한다. 그럼,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김문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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