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소멸해 가는 ‘찰나의 청춘’이 있었다

[책세상]소멸해 가는 ‘찰나의 청춘’이 있었다
최재영 시집 '꽃피는 한 시절을 허구라고 하자'
  • 입력 : 2016. 08.05(금) 00:00
  • 손정경 수습기자 jungks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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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도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죽음이란 삶의 유한성은 철학자 하이데거의 주장처럼 인간을 불안의 존재로 만든다.

시인 최재영은 두 번째 시집 '꽃피는 한 시절을 허구라고 하자'에서 '늙어감'에 대한 실존적 불안을 적어 내려간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한숨 한 번 내뱉어 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 시집이 청춘들에겐 그들보다 조금 일찍 늙어간 선배의 담담한 고백으로, 이미 청춘을 흘려보낸 이들에겐 동년배 친구와의 조금은 먹먹한 대화로 읽혀질 수 있는 이유다.

"돌아보니 폭풍처럼 지나왔노라고/지나온 길은 단숨에 지워졌노라고"(‘꽃이 말하다’), "생은 비루하고 푸르른 젊음들은/쉽게 증발해버리기 마련이네"(‘염전’). “갈수록 틈새가 벌어지는 내 생의 구도에도/날이 저물고 한기가 몰아친다”(‘폭설’).

이 수많은 진술이 가르키고 있는 사실은 시인 자신이 청춘의 시간을 훌쩍 지나 늙어버렸다는 실존적 자각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 '늙어감'을 마냥 안타까움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는 눈 깜짝할 새 당도한 쉰이란 나이와 '잔뜩 녹이 슨 경첩처럼 뭉툭하고 못생긴' 자신의 관절과 마주한다. 하지만 "시큰거리는 무릎이 보이지 않는 길들을 불러들인다"(‘여각’)에서 알 수 있듯 늙어감이 청춘엔 없는 혜안을 가질 수도 있게 한다는 희망적인 이미지로 연결되고 있다.

또한 이 시집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점은 시인의 시가 자연적 대상-세계와의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시인의 시는 전형적 서정시이긴 하지만 도시적·일상적 삶에 근거한 서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시인의 시에는 실존적 불안, 지독한 자기성찰만 있을 뿐 세속적 욕망이나 노동의 세계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늘어진 고목에 주름져가는 자신을, 낙화하는 꽃에는 늙어가는 자신의 생을 투영할 뿐이다.

"오랜 세월 나무는 향기롭게 그늘지고/나는 회화나무보다 더 빠르게 늙어가네"(‘회화나무’)", "목련 안쪽의 세상을 내 더 이상 알 수 없으나/떨어지는 날들도 한 생일 것이니"(‘목련1’).

이처럼 시인은 자연을 한낱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읽어야 할 텍스트로 바라본다. 거기서 자신을, 삶의 궤적을 읽어낸다. 그를 통해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계와 독해방식이 곧 서정의 한 가능성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2005년 ‘강원일보’와 ‘한라일보’, 200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문학의전당.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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