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실천궁행(實踐躬行)의 모습을 보고 싶다

[하루를 시작하며]실천궁행(實踐躬行)의 모습을 보고 싶다
  • 입력 : 2016. 09.14(수)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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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교단에서 봉직하다 퇴직한 후 10여년 만에 교육현장을 찾아가 보니 학생들은 기계하고만 노는 영상세대의 학생으로 변해 있고, 교사들은 학생 앞에서 작아지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현장교육의 과제는 도전의 대상으로 변모해 갈등의 온상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교육의 정책문제는 정치적으로만 해결하려는 경향으로 변하고 있어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정치의 세계에선 정당성과 전통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갈등의 문제를 다수결의 원리로만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교육에서는 타당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며, 아흔 아홉 마리의 양도 중시하면서 때로는 길 잃은 한 마리의 양도 더 중요시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교육은 다수결로 결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다수결이라고 해서 반드시 타당성과 합리성이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교육은 선전이나 홍보도 아니다. 선전과 홍보는 일방통행식 대화라면 교육은 쌍방통행식 대화이다.

정치는 선전이란 수단과 홍보를 통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지만 교육은 상호 존중의 관계를 형성하고 신뢰의 바탕위에서 일의적인 목적과 다의적인 목적을 함의하면서 뜻을 이루고 사랑의 교육을 이끌어 낸다.

교육에서 인사(人師)가 되는 것은 지고지난의 길이다. 학식만 남보다 뛰어나면 경사(經師)는 될 수 있어도, 인사는 되기 어렵다. 따라서 인사가 되려면 뛰어난 학식뿐만 아니라 심신에서 묻어나는 인향의 삶을 영위해야 한다. 인향이 묻어나는 스승다운 스승이란 학생애, 교직애, 학문애의 3애(三愛)교육을 실천궁행하는 삶이다.

먼저 학생을 사랑하는 일이다.

예수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고 했고, 석가는 일체중생 개유불성(一切衆生 皆有佛性)이라 했듯이 사랑과 자비심으로 학생들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 예수를 신앙하듯 석가를 신봉하듯 학생들을 사랑할 때 비로소 사랑의 힘을 발견하고 스스로 교직의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음은 교직을 사랑하는 일이다.

교직을 천직이라 인식하고 자긍심을 견지하며 사랑해야 한다. 교육혼은 천직에 대한 사랑, 천직에 대한 긍지, 천직에 대한 충성에서 우러 나온다. 이럴때 학교급별로 적합한 다양성 교육과 수월성 교육을 특색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학문을 사랑하는 일이다.

독서하고, 탐구하고, 사색하는 삶은 스승을 스승답게 성숙시켜가는 길이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논어의 경구를 곱씹어 볼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땅을, 땅은 하늘을, 하늘은 도를, 도는 자연을 본받으라는 노자의 경구는 스승을 스승답게 만들어 가는 가르침이다. 자연 속에는 침묵의 언어가 숨겨져 있고 무정설법이 담겨져 있으니, 마음의 눈으로 이를 찾아 내고 숙독하라는 메시지가 아닌가. 이 모든 게 명상이고 사색인듯 싶다. 스승은 학생들에게는 동일시 대상으로 스승의 가슴속에 숨어있는 인생관, 가치관을 비롯하여 말솜씨, 옷매무새, 글씨, 걸음걸이 등 잠재적 교육과정의 내용도 함께 배우는 것이다. 군주가 군주다워야 신하가 신하답고, 아비가 아비다워야 자식이 자식 답듯이, 스승이 스승다워야 제자가 제자답다는 말을 새겨 들어야 한다.

스승이 스승다울 때 눈에는 총기가, 얼굴엔 화기가, 몸에는 생기가, 언어에는 재기가, 행동에는 덕기가, 생활에는 윤기가, 인품에는 향기가 은은히 풍겨 나온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한 사도(師道)의 멋이 있겠는가.

아무리 춥고 가난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나무의 삶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실천궁행의 사도를 보고 싶다.

<부희식 전 사대부고 교장·제주수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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