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시작하며]인연이라는 긴 길, 긴 시간

[하루를시작하며]인연이라는 긴 길, 긴 시간
  • 입력 : 2017. 01.18(수)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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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면 현관 앞까지 범람하듯 넘쳐나는 신발들, 왁자지껄 창문을 두드리는 웃음소리, 담을 넘어 흐르는 고소한 전 냄새.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그러한 명절 풍경이 우리 집은 없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제자매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까닭에 부모님은 제사를 지낼 수 없었다. 그래서 명절 우리집 상차림은 떡국과 나물들로 간단하게 차려졌고 그 이후의 시간은 참 고즈넉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끌벅적한 옆집이 때때로 부러웠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홀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해 설 명절에도 홀로 여행길에 올랐었다. 기차와 버스를 타고 당도한 곳은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선운사였다. 산사의 초입으로 들어서니 얼음 밑으로 흐르는 맑은 냇물 소리, 겨울나무 위 소복하게 내려앉은 눈을 이따금 털어내는 바람 소리, 유유자적 빈 하늘을 오가는 새의 울음소리만이 겨울 산을 메우고 있었다. 선운사가 내려다보이는 숲속 작은 민박집에 책 세권과 바지 하나 양말 두 개가 전부인 가방을 내려놓고는 선운산을 헤매기 시작했다. 헌데 이틀이 지나면서 서글프도록 사람이 그립고 이야기가 그리워졌다. 그러던 중 선운사 주변을 맴도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가벼운 배낭 하나에 카메라를 들고 분주한 듯 여유롭게 쉼 없이 셔터를 누르고 있는 여자. 마음의 쓸쓸함 때문인지 왠지 그 여자와 막걸리 한잔에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 길고 긴 산사에서의 밤이 참 따뜻할 것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그 여자가 산사를 빠져나갈 때까지 끝끝내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도 가끔씩 상상한다. 그때 그 여자에게 말 한마디 건넸다면 과연 인연으로 이어졌을까. 실제 그 이후 먼 여행길에서 말 한마디의 건넴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인연들이 적지 않다. 자라 온 곳도 환경도 전혀 달라서 결코 만날 일 없던 사람이 길 위에서 잠시 스치다 인연이 된 것이다.

사는 동안 수많은 인연들이 운명처럼, 장난처럼, 사소한 듯 무겁게 삶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어떤 인연은 생채기만을 남기고 수소문의 기별도 전할 길 없는 먼 곳으로 떠나기도 하고, 어떤 인연은 내내 따뜻하게 곁을 지키기도 하고, 어떤 인연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적당한 무심함으로 오래 이어지기도 한다. 가족의 시작 역시 남남이었던 두 남녀의 인연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인연이란 참으로 신비롭고 따뜻하면서도 무거운 연결고리인 듯하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때때로 전생과 윤회를 거론하면서까지 악연과 인연의 알 수 없는 의문을 풀고자 하는 건 아닐까.

불교에서는 인연설을 인(因)과 연(緣)의 화합에 의한 결과라고 한다. 이를 조금 넓게 해석하면 작은 화분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나기까지도 흙과 물과 햇살 등의 연(緣)이 이어져야 가능하듯 스쳐 지나가는 인(因)도 무수히 많은 연(緣)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라는 것.

한 해가 오가는 이맘때 즈음이면 오래전 홀로 떠났던 선운사의 풍경이 떠오르고, 스쳐 지나간 인연들과 새롭게 만난 인연들에 대해 되돌아보곤 한다. 그리고는 지금, 곁에 있는 인연에 대한 감사함을 마음 깊숙이 새겨 넣는다. 넓디넓은 세상,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 그 사람이, 어떤 긴 길을 건너고 긴 시간을 지나 내 앞에 당도하였는지는 억겁의 시간을 모조리 기억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일 테니…….

다가오는 명절, 많은 사람들이 조금 힘들고 버거워도 기적과도 같은 인연들과 함께하는 따뜻한 시간들로 벅찬 위안을 받기를 기원한다.

<김윤미 서귀포시 귀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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