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일제강점기 조선인 건축가를 기억하며

[책세상]일제강점기 조선인 건축가를 기억하며
김소연의 '경성의 건축가들' 비주류 건축가들의 삶
  • 입력 : 2017. 03.24(금) 00:00
  • 홍희선 기자 hah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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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세운 학교서 건축 공부
차별·편견 속 실력 쌓았지만

단지 기술자로 여겨진 그들

'경성의 건축가들'은 일제강점기에 근대건축을 배우고 건축가로 성장했던 조선인 건축가들과 비주류 외국인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경성의 근대건축물은 한국전쟁과 개발논리에 따라 대부분 사라졌지만 서울 시내를 걷다보면 고층건물 사이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남아있는 몇몇 건물은 아직 만날 수 있다. 경교장, 명동예술극장, 딜쿠샤, 중명전, 간송미술관, 덕수궁 현대미술관, 서울도서관 같은 건물이 대표적이다. 최근 몇 년간 '역사적 의미'가 깃든 근대건축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증가했다. 그 관심에 걸맞게 건물보존에 관한 대중의 의식도 높아져 자칫 철거될 위기에 처했던 근대건축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역사교육의 장으로 이용되는가 하면 원래 형태를 일부 보존하는 형식으로 리모델링해 공공건물로 사용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근대건축의 '역사성'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건물의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건물 그 자체'다. '경성의 건축가들'은 우리가 재평가하고 기억해야 할 건물의 이야기, 건물을 설계하거나 시공했던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제가 세운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나온 조선인 건축가들이 취직한 곳은 대부분 총독부나 경성부청 같은 관청이었다. 그들은 일제의 지배와 수탈을 위한 건물을 주로 지었다. 부업으로 했던 설계도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회부된 건축주가 많았다. 이쯤되면 친일논란이 일어날만하다. 그런데도 건축주만 논란의 대상이었을 뿐 건축가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는 건축가는 단지 기술자로 인식된 탓이다.

경성의 건축가들에는 조선인 최초로 건축기사가 됐고 역시 조선인 최초로 종로구에 건축사무소를 연 박길룡, 최고의 구조계산 전문가로서 미쓰코시백화점, 조지아백화점, 경성제국본관 등을 구조계산한 것으로 알려진 김세연 등 조선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연 나카무라 요시헤이, 다마타 기스지 등 비주류 외국인 건축가들도 나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그나마 자료가 있어 이야깃거리를 남긴 사람들이다. 자료가 없어서 아예 잊힌 사람도 많다.

저자 김소연은 시대를 풍미했던 혹은 그러지 못하고 안타깝게 저물었던 이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건축물이라는 유산을 한번쯤 되돌아 볼 때가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그 시대의 또다른 이야기들을 알게 된다면, 개발에 대한 관점과 건물의 보존 방식 그리고 언젠가 역사가 될 이 시대 건축가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는다. 루아크.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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