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시작하며]아버지의 정원

[하루를시작하며]아버지의 정원
  • 입력 : 2017. 03.29(수)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파리한 가지사이로 잔뜩 움츠리고 있던 꽃망울이 하나둘 화사한 얼굴을 내민다. 봄이다. 이렇게 자연은 달력을 보지 않고도 시간이 흐름을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내 옆엔 항상 자연이 있었고 집 앞에 핀 꽃과 나뭇잎의 색상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곤 했다. 생전에 나무와 꽃가꾸기를 좋아하셨던 아버지 덕에 우리 집에는 아주 작은 정원이 탄생했다. 집 울타리주변을 이용한 화단이라 길이는 길쭉하지만 폭이 한두 뼘 남짓으로 좁다. 그래도 아버지는 지형을 알뜰하게 활용해 내셨다. 보기 싫은 콘크리트 담장은 오죽(烏竹)을 심어 가리고 그 옆으로 녹나무와 구상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고 두 그루의 감나무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무를 심을 수 없는 공간에는 각종 화분들이 자리했다. 대문 앞 커다란 화분에는 철쭉으로, 현관 입구 계단아래에는 장미, 백합, 동백, 천리향, 용설란 등의 화분들로 웬만한 화단 못지않게 가꿔놓았다. 그래도 아버지의 화분은 자꾸만 늘어난다. 꼬박꼬박 물을 주시고 음식물을 발효해 거름을 만들어 묻어주는 정성 등으로 나무며 화초들이 잘 자란 탓에 계속적인 분갈이를 하며 늘어난 덕분이다. 그뿐인가? 우리 집에 오면 죽어가던 식물도 되살아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파되어 시들거리는 화분만 생기면 우리 집으로 직행이다. 그리곤 아예 터를 잡고 자리를 차지해갔다.

이렇게 식물 가꾸기의 달인이 되어가던 아버지는 마당을 다 채우시고 난 어느 날부터인가 흙을 담은 스티로폼상자를 붙여 대문 위 공간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 냈다. 아침, 저녁 그 위에 올라가서는 물주고 잡초 뽑고 지지대를 끼워 세워주고 여름 햇살에 상하지 말라고 그늘막까지 씌워준 덕에 상추, 부추, 고추, 피망, 방울토마토 등 다양한 채소가 이 공간에서 탄생했다.

그렇게 우리는 몇십년 동안 아버지의 정원과 함께했다. 스치듯 지나갔지만, 추운 겨울 눈보라를 이겨낸 목초들에서 봄의 햇살을 받으며 새싹이 움트는 걸 보았고, 따뜻한 날의 꽃과 열매를 보며 풍족해 했고 가을의 단풍에서 세월의 흘러감을 느꼈다. 아버지의 정원을 통해 자연스레 자연의 이치를 깨우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아버지도, 아버지의 정원도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돌보지 못한 탓에 정원의 생명들도 생기를 잃고 스러져 갔다. 나만 아버지를 잃은 게 아니라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의 손길을 받던 식물들도 아버지를 여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참 부지런히도 이것들을 돌봤다. 물과 거름을 주는 것은 기본이고 하루에 두세 번 주변에 나뭇잎이 떨어지면 쓸어주고 잡초를 뽑고, 여름이면 강한 뙤약볕을 가려주고 겨울이면 춥지 말라고 포대로 감싸주고 난초화분들은 보일러실이나 창고에 넣었다 뺐다하며 온도를 조절하는 등, 아버지가 계실 때는 미처 몰랐던 일들이다.

이렇듯 작은 정원을 가꾸는데도 지극 정성이 필요한데 하물며 나랏일은 오죽하겠는가? 밤잠을 설치며 고민을 거듭해도 미처 손길이 못 미치는 일들이 허다할 터. 나라를 책임지는 대통령은 그저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 모두의 마음을 헤아릴 따뜻함이 필요하다. 또한, 촛불의 민심이 원하던 것은 상식이다. 봄이 오면 꽃이 피는 자연스런 이치가 제자리 잡길 원한다. 이제 곧 대통령 선거다. 화분을 가꾸는 것 못지않은 정성과 부지런함을 갖춘 사람냄새 나는 지도자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조미영 여행작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524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