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우의 한라칼럼] 우리들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

[송창우의 한라칼럼] 우리들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
  • 입력 : 2018. 01.30(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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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절기가 시작되는 입춘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경험상 몇 번의 추위가 더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봄은 이제 멀지 않았다. 막 움틀 준비를 하는 땅을 바라보며 전혀 멈추지 않는 시간 속에서 면적이 아니라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하루를 단위로 땅을 파는 나라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기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이 걸어간 흔적을 괭이로 작은 구멍을 파서 잔디를 심고 반드시 출발점으로 돌아서 나와야 한다는 간단한 조건뿐이다.

넓고 비옥한 땅에 한이 맺힌 한 농부가 이곳을 찾아 하루를 샀다. 새벽이 되자 파콤이라는 이름을 가진 농부는 괭이를 가지고 출발점인 비교적 높은 언덕에 섰다. 언덕엔 이 조건을 따르는지를 감시할 사람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맘속으로 해가 뜨는 쪽으로 출발해 왼쪽으로 돌면서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한 그는 지평선 위로 햇빛이 드러나자 괭이를 둘러메고 초원을 향해 나아가며 걸음을 재촉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괭이로 파서 잔디를 심었다. 멀리 갈수록 땅은 더욱 비옥했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잔디를 심고 주위를 둘러보니 언덕의 사람들은 개미처럼 작은 점으로 보였다. 가져온 물을 마시며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더 넓은 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앞으로 걸어 나아갔다.

태양이 정남 쪽에 있었다. 그만큼 시간은 남아 있었으나 피곤함도 함께 몰려오고 있었다. 다시 방향을 왼쪽으로 돌면서 괭이로 구멍을 파고 잔디를 심으며 주위를 다시 둘러보자 언덕은 보이지 않았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목욕을 한 듯했고, 다리도 휘청거렸으나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사각형이 된다는 생각에 있는 힘을 다해 쉬지 않고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태양 역시 쉬는 법이 없다. 그는 이제 출발했던 언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여겼으나 그곳까지는 한참 남아 있었다. 언덕 위에 사람들은 그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지만 태양은 지평선에 끄트머리 부분만 걸려 막 사라지는 참이었다. 기진맥진한 그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언덕을 향해 달렸다. 넘어지면서 출발점에 도착하자 쓰러졌고, 사람들의 와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그를 일으켜 세웠으나 그는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은 읽었을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라는 물음이다. 시간이 나면 땅을 긁어모으는 이 시대, 주인공 파콤은 농부로서 비옥한 넓은 땅에서 농사를 지으려는 꿈을 가졌으나 그것 역시 탐욕이었다. 지금 이 땅에서 펼쳐지는 '땅 쟁탈전'은 땅을 팔고 사고 파헤치면서 불로소득을 챙기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경제 불평등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돈이 한쪽으로 몰려 몇몇 부자들은 돈을 주체하지 못해 흥청망청이고 자식으로 세습되는 금수저와 한쪽은 그것 때문에 목숨까지 내놓고 있는 흙수저로 양분된 사회라면 정의롭지 못한 나라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것도 능력이라고 우기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우리처럼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집단의 부속품으로 전락해 월급으로 생활하는 직장인도, 하루를 팔아 하루를 연명하는 노동자도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제주라는 공동체는 무너지고 이 땅에서 살던 우리도 쫓겨나지 말란 법도 없다.

여기서 한마디, 그렇게 힘들게 넓은 땅을 얻으려고 아등바등했던 우리의 주인공 파콤이 차지한 땅은 고작 2평 남짓한 무덤이었다.

<송창우 약초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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