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우의 한라칼럼] 겨울 들판에서 한 청년의 죽음을 듣고

[송창우의 한라칼럼] 겨울 들판에서 한 청년의 죽음을 듣고
  • 입력 : 2018. 12.18(화) 00:00
  • 김경섭 수습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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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끝자락에 눈발이 흩어져 날린다. 움푹 팬 구릉에는 푸른 목초가 군데군데 자라다가 이제 시작된 매서운 칼바람보다 먼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뱀처럼 둘러쳐진 밭담 주변으로는 씨앗을 다 날려 버린 식물들이 패망을 앞둔 장수의 깃발처럼 이파리가 찢기어 나부끼고 있었다. 청미래덩굴도 물기가 다 빠진 붉은 열매를 달고 눈바람에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불나비처럼 내려온 눈발이 굴러다니다가 밭담 모퉁이에 조금 쌓였다가 이내 녹아버렸다. 손바닥만 한 작은 공터에는 강아지풀들이 차지했고 그곳에는 참새들이 잠시 앉았다가 통통해진 자기 몸무게 때문에 땅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가지에 화들짝 놀라 짹짹 거리며 이리저리 분주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그 위에는 까마귀와 까치들이 바람을 등지고 날거나 높은 가드레일에 바람을 맞으며 앉아 참새들의 그런 모습을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뱉는 들숨과 날숨을 멈춘 적이 없는 바다는 하얀 거품으로 하얗게 변했으며, 수평선 위에는 새끼 밴 암 망아지 배처럼 축 처진 검은 구름은 신문과 방송 화면에 나온 검은 안경테를 하고 마스크를 쓰고 피켓을 든 청년의 모습과도 같았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 당당하게 자기가 일하는 곳과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밝힌다.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 운전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며 만남을 요구하던 젊은이는 소리 없이 외치다가 차가운 석탄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우리 곁을 떠났다. 그것도 숨진 지 4시간 만에 시신이 발견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이, 아니 많은 비정규직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며 이렇게 죽음과 마주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촛불이 일렁이고 향냄새가 진통하는 차가운 시신으로 누워있는 고(故) 김용군씨 부모의 마음은 억정이 무너지는 아픔으로 아들을 가슴에 묻겠지만 다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말라고 하는 법이 없다. 온수가 터졌다고 땅을 파고 들어가다가, 컵라면을 가지고 다니며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다가, 용광로를 돌아보다가 청년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어렵고 힘들고 죽음에 내몰리면서도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비정한 현실과 마주하면서 나를 포함한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추운 겨울 통통한 참새를 외면하는 척하면서 호시탐탐 노리는 까치나 까마귀와 같지는 않았을까. 비정규직은 개인뿐만 아니라 한 가정을 완전히 피폐하게 만들고 사회를 또 다른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다가 이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또 다시 나누고 있다. 이건 차가운 겨울 길바닥에서 촛불을 들고 인간답게 살아가려고 일어섰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고, 죽지 않게 해달라며 차가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철탑 위로, 고공 크레인으로 올라가 외치고 있다. 그래서 만나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어느 정부보다 잘 알고 있다고, 그래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남북이 하나 되고 전쟁 없는 한반도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이 사회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만나시라. 시간은 약자 편에 있지 않다. 망각은 시간과 병행하기에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게 농사를 짓는 사람의 마음이다. <송창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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