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을 열며 새해 다짐을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한 해의 말미에 서 있다. 연말 TV에서 펼쳐지는 각종 대상의 이벤트처럼, 제주 건축계는 '제주 국제 건축포럼'을 비롯해 '제주 건축대전'의 전시로 한 해가 마무리된다. 이 시기에는 건축가들마다 공을 들였던 건축현장을 준공시키고, 건축 사진가에게 기록사진을 의뢰하는 등 각자의 포트폴리오를 리뉴얼하느라 분주하다. 이는 건축가로서의 자존감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더불어 올해 건축계에서 이슈가 됐던 제주 문학관, 어린이 도서관 등 굵직한 건축들의 개관 소식이 들려온다. 개관식은 건축주의 행사이고 잔치라 할 수 있지만 설계자인 건축가에게는 묘한 긴장감을 불러온다. 건축의 완성도에 대한 세간의 비평은 물론이고 행사 중에 설계자에 대한 대우가 어떠할지가 곧 자신의 자존과 연계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관식에 설계자인 건축가가 초청되는가에서부터 좌석의 위치가 어디인지, 테이프 커팅에 참석을 하는지, 건축의 설계 개념과 의미를 설명할 기회가 주어지는지 등의 문제는 행사 주관자의 입장에서 사소한 것들이다. 하지만 건축가들에게는 바로 자존감의 잣대가 된다. 이는 건축가가 들인 노력에 대한 세상의 평가를 묻는 일종의 '자존감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자존감 게임에 상처 입은 한 건축가의 하소연을 듣게 됐다. 제주 문학관과 같은 좋은 건축을 제주에 세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덕담에 그는 개관식 행사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움을 털어놓는다. 제주 건축계가 선도적이라고 자랑하던 입장에서 부끄러웠다. 또한 이 건축을 위해 헌신한 그의 노력을 동료 건축가로서 존경하고 있었기에 동병상련의 울분이 치솟았다. 건축가는 용역비에 단순하게 노동력을 파는 집단이 아니다. 집이 설계될 땅과 건축 그리고 거주하는 사람을 '잇는 일'에 혼을 담는다. 마치 자식을 잉태해 잘 키워서 출가시키는 부모의 마음과 같다. 그 결혼식에서 신랑신부의 부모가 홀대받아서야 되겠는가? 제주 건축계의 한 사람으로서 송구한 마음을 전할 뿐이다.
이런 일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 만남 후에도 언론을 통해 전해오는 개관식 뉴스의 어디에도 건축가의 이름은 없다. 그럼에도 건축가들은 자존을 세우는 일에 정진한다. 자신의 건축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더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전시와 발간 같은 문화 행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올해도 ‘한국건축가 협회 제주 건축가회'의 정기 회원전이 6대 광역시의 건축가들과 '도시재생'을 주제로 교류전의 형식으로 열리고 있다. 전시는 제주 건축계 6세대 건축가 19인과 건축비평가 김형훈이 공동 저술한 '나는 제주 건축가다!'의 출판기념회를 겸하고 있다. 세상과 교감하기를 기대하며 건축가들은 여전히 자존감 게임에 빠져있다. <양건 건축학박사.제주 공공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