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쓴 ‘회화론’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그중 하나가 파라고네 즉 예술 장르 간의 비교다. 당시에는 시를 눈으로만 읽기보다 낭독을 했기에 청각으로 전달되는 예술로 보았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회화는 눈으로 전달되고, 시는 귀로 전달되기 때문에 회화가 시보다 더 우수하다고 주장한다. 눈은 고귀하고 믿을만하지만, 귀는 신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시각을 우위로 한 감각의 위계가 예술 장르의 위계를 결정한다고 여겼다. 시각이 다른 감각 기관보다 뛰어나다는 이러한 견해는 시각을 이성과 연결 지으면서 근대를 지배했다.
오늘날 시각이 다른 감각보다 더 우수하다는 주장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느 시대보다 시각을 중심으로 사회가 구성돼 있다.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눈을 자극해 상품의 구매를 유도한다. 또한 소비자는 화려하거나 충격적인 볼거리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이러한 경향은 시각예술에도 영향을 끼쳐 크기가 엄청나게 크거나, 이미지가 충격적이거나, 표면이 아주 매끄럽고 광택이 나는 등 시각 효과를 극대화한 작품이 늘었다. 비시각장애인이 감각 기관에서 받아들이는 전체 정보량 중 시각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이유는 근대 이후 시각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 체제가 만든 진화 때문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시각을 중심에 두고 형성된 사회는 다른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또한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사이에 경계를 만들고 시각장애인이 정보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시각장애인이 시각 정보를 이해할 수 없으니 그것을 전달하려는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단정 짓는다. 물론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全盲) 시각장애인은 미술 작품을 눈으로 감상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시각장애인은 시각예술을 몰라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시각장애인이든 비시각장애인이든 대개 시각장애인이 미술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회화에는 형태, 구도와 같은 요소도 있지만 색도 주된 요소인데, 특히 태어날 때부터 전맹인 시각장애인은 색을 알 수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시각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고 여겼던 많은 요소는 다른 감각으로도 파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직접 대상을 만져보면 된다. 언어로 설명해 주는 방법도 있다. 작품을 만져볼 수 있도록 모형을 만들고, 시각장애인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 작품을 설명해 준다면, 지금은 시각장애인이 미술 작품을 미적 대상으로 감상할 수 없어도 미술에 관심을 둘 수 있으며, 미술에 관련된 정보를 알아갈 수 있다. 이렇게 쌓인 정보가 다른 감각 기관에 의해 어떻게 새로운 미적 경험으로 이어질지 우리는 모른다.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도록, 새해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각예술 관련 기획이 늘어나길 바란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