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건강&생활] 이사 그리고 이별 준비

[이소영의 건강&생활] 이사 그리고 이별 준비
  • 입력 : 2022. 01.26(수)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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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 내내 1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녔으니 어디에 뿌리 내릴 틈 없이 참 많이도 옮겨 다녔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느라, 그다음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니느라 항상 희생했던 건 안정이었다. 항상 내년에는 또 옮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지내다 보니 큰 물건을 들이거나 오래 걸리는 일을 시작하는 일이 없어 살림이 비교적 가벼운 것이 좋은 점이라면 좋은 점이겠고, 가족도 없는 이 땅에 오래 사귄 친구도, 살가운 이웃도 없다는 건 참 아쉬운 점이다.

지금 사는 곳에 이사 오면서는 이번엔 꼭 정착하리라 다짐을 했기에 이곳에 사는 마음가짐은 과거의 여느 곳들과 달랐다. (비록 월세를 살고는 있으나) 오래 살 곳으로는 어디가 적당할까 하며 이 동네 저 동네 구경도 다니고, 지역 신문도 구독해 읽었다. 환자 진료를 보는 건 기본적으로 똑같지만 그래도 내가 이 자리에 오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왜인지 더 차분해지는 기분이곤 했다. 그런데, 인생은 내가 계획한 대로 "살아가는" 거라기 보다 내 마음과 전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에 가깝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이 차분한 시간이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먼 타 주로 이사를 하게 됐다. 꿈꾸던 직장으로 가는 거라 기쁜 일이지만 그동안 정 붙였던 환자들을 두고 가게 된 건 마음이 아프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다른 모든 인연과 마찬가지로 만남과 헤어짐이 있다. 특히 정신과에서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치료에 몹시 중요한 부분이다 보니 환자를 처음 대할 때는 물론이고 어떤 이유에서든 치료의 마무리를 지을 때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환자 중에는 나를 증상에 맞춰 적절한 약을 처방해주는 전문가 정도의 존재로 생각하고 딱 그만큼의 거리감을 두고 대하는 환자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본인의 내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나를 믿고 감정적으로 의지하는 환자들도 있다. 그리고 그 환자와 내가 어떤 관계였든지, 꾸준히 만나오던 의사가 어느 날 떠난다는 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리라 생각한다. 떠나기 전 충분한 시간을 두고 환자들에게 편지를 쓰고, 진료 때마다 예정된 이별을 이야기하며 환자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게 돕고, 더불어 나의 마음도 준비하며 또 한 번의 이주를 준비하고 있다.

살면서 숱하게 만나고 헤어짐을 겪지만, 문득 돌아보면 헤어지는 일이란 항상 어려운 일이었고 그 어려운 마음을 마주하기 싫어서 피하고 싶기만 했던 것 같다. 나의 마음이 다칠까 지키느라 남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어차피 앞일은 내다볼 수 없는 것. 다시는 이사를 하지 않겠다느니, 정착을 하느니 하는 원대한 계획 말고, 이번에 떠날 때만큼은 이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성숙한 이별,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보리라 다짐해본다. <이소영 미국 메릴랜드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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