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문화광장] 평범한 일상과 초월적 영화

[김정호의 문화광장] 평범한 일상과 초월적 영화
  • 입력 : 2022. 08.16(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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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에, 학교에서 영화를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그 감독의 영화가 왜 좋은지 이해 못 했던 감독이 있다. 다분히 서구의 시선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강의 시간에 비몽사몽간에 보기는 했지만, 저런 내용이라면 우리나라 일일연속극이나 주말 연속극에서 매번 다루는 내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 감독은 일본의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다. 그런데 몇 년 후 외국에서 강의 시간에 그 감독의 동일한 영화 '동경 이야기'(1953)를 보면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나이가 30대에 들어서고, 결혼했으며, 아내가 출산했으나, 우리나라에 있었더라면 여러 사람의 축하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모든 것을 아내와 나 둘이서 해결해야 하는 나의 상황이 오즈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게 한 것 같다. 때로는 벗어나고 싶었고 낡은 관념이라 여겨지던 가족, 친족, 이웃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 것이다. 이런 때만 느끼는 것도 이기적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노부부가 도쿄에 사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상경하나, 의사인 장남과 미용실을 운영하는 딸은 바쁜 일상을 핑계로 그들의 방문을 부담스러워하며 온천으로 여행을 보낸다. 노부부는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이해한다. 전쟁 중 남편이 전사한 둘째 며느리가 이 노부부를 애정을 가지고 모시는데, 시어머니는 둘째 며느리에게 재혼할 것을 권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시어머니는 죽고 다시 삶은 지속된다.

어머니를 모시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오즈가 주목한 것은 가족과 결혼이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결혼 생각이 없는 여성들은 아버지나 어머니 오빠나 심지어는 시부모에 의해서 결혼을 요구받는다. 어떤 경우에는 결혼하려는 딸을 허락하기 망설이는 아버지를 다루기도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영화 33편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지구를 구하거나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등의 전 지구적 거대 담론이 아니라, 들뢰즈의 표현대로라면 이런 소소한 작은 형식의 액션을 다루고 평범한 일상을 다루고 있다. 공기처럼 누구나 가지고 있어서 그 가치를 종종 잃어버리는 가족의 중요성은 공식적으로 5600여 만명이 사망한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서구와 일본에 공통분모로 존재하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현대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 한 개인이나 가족의 소멸은 거시적으로는 거대한 자연의 한 부분이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하나의 우주의 소멸이다. 중일전쟁과 싱가포르 등 3번의 군대 경험이 있는 오즈는 전쟁 관련 영화는 만들지 않았지만, 평범한 일상을 다룸으로써 그 소중함을 부각한다. 폴 슈레이더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와 로베르 브레송, 칼 드레이어 감독을 들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고, 논리적 분석을 초월하는 초월적 시네마를 만든 감독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오즈의 영화는 네이버 시리즈 온이나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김정호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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