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까지 살아남았던 ‘두무악’
18세기의 학자 이규경이 쓴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한라산은 제주 남쪽 20리에 있다. 주의 진산으로 운한을 잡아당길 수 있다 하여 한라산이라 한다. 두무악이라고도 하며, 봉우리마다 위가 평평하여 원산이라고도 한다. 한가운데는 높고 사방둘레는 차차 낮아져 둥근 모양을 한다. 고기에 이르기를 한라산 일명 원산 즉 원교산이다. 그리고 북동쪽에는 영주산이 있다. 옛날에는 탐라를 영주산이라고 불렀다. 한편으로 부산이라고도 했는데, 산봉우리마다 못이 있는데, 물을 저장하는 그릇과 같기 때문이다”
1903년~1906년에 걸쳐 상고이래 대한제국까지의 우리나라 문물제도에 대해 이전의 문헌을 총 망라한 ‘중보문헌비고’란 책에도 나온다. "한라산(한편으로 '원산'이라고 한다. 남쪽 20리에 있다)은 그 은하수를 붙잡고 잡아당길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산봉우리 맨 위는 모두 평평하고 둥글고 못이 있어 솥과 비슷하기 때문에 부산(釜山)이라고 했다. 세속에서 일컫기를 솥을 '두무'라 하기 때문에 또한 '두무'라고도 했다."
이 기록들로 볼 때 16세기까지는 한라산, 두무악, 원산을 같이 썼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던 것이 17세기 중엽에 와서 여기에 부악과 두모악이 추가된다. 최근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한라산이 우리나라 역사(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사’ 중, 최영 장군이 1374년(공민왕 23) 목호 평정을 위해 제주도에 들어왔을 때다. 이런 사정으로 보아 '한라산'이라는 명칭은 그 이전에 이미 호칭 되고 있었으며, 조선 시대부터 널리 확산했다고 볼 수 있다.
한라산 전경. 예부터 한라산은 두무악 등 다양한 이름으로 표기돼왔다.
멸종한 제주어 두무악의 정체
문제는 ‘고려사’에 이미 한라산의 별칭으로서 두무악과 원산이라는 이름이 같이 나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고려 시대에 이미 한라산이란 말과 함께 두무악과 원산도 쓰였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차츰 다루겠지만 한라산이란 말이 지금의 한라산을 지칭하면서 독립적으로 쓰였는지, 이들 두 개의 명칭과 조합으로 사용했는지는 아직 문헌상으로 확정할 수 있는 기록은 없다. 아직 이런 의문을 가지고 추적한 논문은 물론 그 어떤 기록도 나와 있는 건 없다. 두무악이라는 말과 원산이라는 말 역시 어떤 우리 고유어를 한자로 옮겨적는 과정에 나온 것인지 이 ‘고려사’의 기록처럼 그 이전 혹은 처음부터 이렇게 써왔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장구한 세월 제주도민과 함께 명맥을 이어 온 두무악이란 명칭은 이제 사용하지 않는다. 제주어에서조차 20세기 들어 멸종한 말이 된 것이다.
두무악이란 말이 이제는 박제돼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사어가 됐다. 20세기 초에 나온 ‘증보문헌비고’란 책에 "산봉우리 맨 위는 모두 평평하고 둥글고 못이 있어 솥과 비슷하기 때문에 부산(釜山)이라고 했다. 세속에서 일컫기를 솥을 '두무'라고 하기 때문에 또한 '두무'라고도 한다"라는 기록이 살아 있는 '두무'의 마지막일 것이다.
두무악은 머리가 없는 산?
그렇다면 과연 두무(頭無)란 무슨 뜻인가? 한자 그대로 보면 '머리가 없다' 정도의 뜻이다. 한라산을 두무악이라 달리 부른다는 옛 책들이 있다. 그 저자들은 한라산을 달리 왜 두무악이라 하는지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김정은 1519년 그의 저서 ‘제주풍토록’에서 '산봉우리가 모두 다 오목하여 가마솥과 같이 움푹하여 진창을 이룬다'라고 썼다. 아마 김정 선생께선 산이라면 봉우리가 높이 솟아올라 있어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듯하다. 어떻게 산꼭대기가 오목할 수 있단 말인가. 산 정상에 움푹 팬 분화구가 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 할 일 아닌가. 이런 사실만으로도 신기한 일이니 우선 이렇게 기술했을 것이다. 여기까진 당연한데 다음 대목이 좀 이상하다.
즉, '모든 봉우리가 다 그러하므로 두무악이라 한다'라고 한 것이다. 한라산은 봉우리가 여럿 있으나 그중 어떤 예외적인 것만이 아니라 그 봉우리가 다 오목하므로 두무악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산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는 게 당연한데 한라산은 그렇지 않다. 즉, ‘산머리가 없는 산이다’는 뜻으로 두무악이라 한다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산머리가 없는 산이라는 뜻으로 쓰려면 두무악이 아니라 '무두악'이라 해야 자연스럽다. 다시 생각해보자. 김정 선생은 제주도에 와 봤더니 한라산이라는 높은 산이 있는데, 이곳 사람들이 두무악이라고도 하더라. 그건 내가 볼 때 산머리가 없는 산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쓰는 것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이건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두무악인가 무두악인가. 우리말에서 이와 같은 '무'의 용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균이 없는 상태를 무균상태라 하지 균무상태라고 하지 않으며, 무색무취라 하지 색무취무라고 하지 않는다. 무능력자라 하지 능력무자라 하지 않으며, 무례하다고 하지 예무하다고 하지 않는다. 무정부 상태라고 하지 정부무 상태라고 하지 않으며, 무척추동물이라고 하지 척추무동물이라고 하지 않는다. 바람이 없는 곳을 무풍지대라고 하지 풍무지대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처럼 '무'를 앞에 놓는 예는 무수히 많은데 그 반대의 사례는 없다. 이건 오랜 기간에 걸쳐 굳어진 우리 국어의 언어습관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쓰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도 머리가 없는 산이라는 뜻으로 무두악이 아니라 두무악이라 했다니 이상한 것이다. 산이란 방향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머리가 있는 산과 없는 산으로 구분한다는 발상 자체도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