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형상화로 시적 서사참혹함 치유할 지극한 사랑‘옴죽옴죽 엄마 손가락 빨던'신음 섞인 탄식 나온 문장들순환의 역사인 눈(雪)과 함께사실 목격하는 증언의 눈(目)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새를 구하러 제주 중산간 마을에 오게 된 경하는 폭설로 고립된 그곳에서 인선의 식구들이 겪었던 제주 4·3을 목도하게 되는데…. 이미지들의 형상화로 이루어지는 시적 서사는 참혹한 제주 4·3을 오직 지극한 사랑의 힘으로만 치유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저자 한강, 출판사 문학동네>
▶대담자
▷양은심 : 서귀포 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
▷한상용 : 남주고등학교 교장, NJ북클럽 회원
▷고종성 : 남주고등학교 문학담당 선생님, NJ북클럽 회원
▷김효정 : NJ북클럽 회장
▷문귀례 : NJ북클럽 총무
▷강은희, 김미화, 김혜진, 이현정, 조성진 : NJ북클럽 회원
▷양은심(이하 위원) : 책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은?
▷김혜진 : 제주에 이주한 지 10년째이지만 4·3에 대해 잘 몰랐었는데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알게 됐다. 책을 읽으면서 먹먹했던 순간들이 있었고 그 일을 겪으신 분들과 가족들에게는 4·3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픔의 다른 말이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현정 :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인선의 어머니가 인선에게, 인선이 다시 친구 경하에게, 경하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4·3의 이야기는 다소 혼란스럽고 어려웠다. 하지만 이러한 전달방식은 4·3이 세대와 시, 공간을 넘어 규명되어야 할 그것들과 화해해야 할 것들이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종성 : 이 책은 작가의 이름만으로 무게감이 있었기에 각오하고 읽었지만 몇 번 실패했다. 특히나 제주의 4·3을 인물이나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이미지화시켰기 때문에 이 파편들을 연결하는데 꽤 힘들었다. 그래도 한강 작가가 그려낸 4·3의 이미지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4·3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새는 연약하지만 구하고 싶은 것의 구체적 실체이자 모든 걸 걸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사랑의 다른 말이기에 인선의 어머니가 오빠의 행방을 찾으려 하고, 인선이 다시 어머니의 기억에서 빠진 4·3의 흔적을 쫓았던 것은 지극한 사랑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조성진 : 다소 무겁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시를 읽는 듯한 섬세한 표현들로 4·3을 이야기했고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것들을 증명했다.
▷위원 :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문장은?
▷한상용 : 4·3에 대한 잔인한 폭력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던 부분 중에 '어둠 속에서 옴죽옴죽 엄마 손가락을 빨던 입이'란 구절이다. 군경이 쏜 총알이 가슴을 뚫고 턱을 관통해 팥죽을 뒤집어쓴 것 같이 피를 많이 흘린 8살 난 동생에게 인선의 어머니가 자신의 손가락에 피를 내어 그것을 입에 물려줬었던 그 날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그 옴죽대는 감촉이 내 손가락에도 전해졌고 앞니 빠진 자리에 그 손가락이 딱 맞았다는 구절에서는 신음 섞인 탄식이 나왔다.
▷김효정 : 인선의 어머니랑 이모가 초등학교 운동장을 헤매면서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8살 동생의 시신을 찾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 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이란 문장은 이 소설에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듯한 예감이 들 때마다 끊임없이 되풀이되곤 하는데, 이것은 잊을 수 없는 비참한 가족의 죽음을 소환하면서도 이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는 것은 지극한 사랑의 힘만이 그 아픔을 보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원 : 작가는 '의지로 택한 작별', '상상조차 못 했으며 모든 걸 걸고서라도 멈추고 싶은 작별'을 말하기도 했는데요. 책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에 자신만의 해석을 곁들인다면?
▷고종성 : 부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했음을 느낀다는 의미로 폭력에 의한 작별은 작별이 아니며, 작별하지 않았으므로 생과 사가 공존하고, 4·3과 작별하지 않았으므로 유가족의 아픔이 온전한 우리들의 아픔으로 함께하기에 언제쯤이면 이런 제주 4·3과 잘 작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조성진 : 작별은 만남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수많은 4·3 희생자와 유가족들은 당시 생사를 알지 못했고 국가권력에 의한 희생이었음에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이라는 만남과는 거리가 있었다.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었음에도 유죄라는 판결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4·3은 아직 작별할 수 없는 비극적 역사'라고 해석해 봤다.
▷한상용 : 봉합된 상처 자리에 바늘을 찔러 피를 흘리게 하여 신경을 살리는 고통과 그 과정에서의 두려움과 아픔, 희생이 있더라도 우리는 결코 국가나 권력, 이념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에 대해서는 작별해서는 안 된다. 아니 작별을 못 한다. 아픔이 있더라도 기억하고 그 속에서 진실을 밝혀내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상생하며 평화와 인권과는 절대 작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해석해 봤다.
▷위원 : 작가는 '눈'이라는 소재를 감각적 아픔으로 집요하게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것에 관한 생각은?
▷김효정 : 책 전반에 걸쳐 내리는 눈은 1948~1949년 가장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겨울을 상징함과 동시에 아픔과 고통을 촉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물은 끊임없이 순환되므로 48년 겨울의 눈이 올해 내렸던 눈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이렇듯 눈(雪)은 순환의 역사임과 동시에 사실을 목격하는 증언의 눈(目)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미화 : 온다. 떨어진다. 날린다. 흩뿌린다. 내린다. 퍼붓는다. 몰아친다. 쌓인다. 덮는다. 모두 지운다. 작가는 단순히 눈이 내리는 형상을 표현한 것 같지만 가슴 아픈 4·3의 주어를 여기다 대입해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눈은 4·3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의 고통이라는 것을.
▷김혜진 :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순전히 개인적인 무게일 수 있는 눈의 무게가 인선에겐 과연 몇 킬로그램이었을까?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다녔던 여자애가'라는 부분을 읽고 나자 가슴에 얹히는 눈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다.
▷위원 : 내가 생각하는 4·3은?
▷김효정 : 남아있는 사람들의 아픔이기에 4·3은 아직도 진행형이고 개인적으로는 4·3을 겪으신 할머니의 삶이다.
▷한상용 : 이 책의 표현을 빌린다면, 제대로 들여다볼수록 더 고통스러운 것, 명치에 걸려 그토록 이글이글 타던 불덩이 같은 것, 화살촉처럼 오목 가슴에 막혀 있는 것, 예리하게 벼린 칼 같은 기억이 4·3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미화 : 아버지 어머니가 실제 4·3을 겪으셨고, 아버지는 당시 다리에 총상을 입어서 4·3 기념행사에도 참석하시곤 하셨다. 어머니는 아홉 남매와 중산간 동굴에서 숨어 지냈다고 얘기하시면서 그때의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최근에 4·3 희생자들이 수록된 책을 보게 됐는데 한 마을에서만 삼사백 명이 희생자 명단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 아버지 가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거라는 씁쓸한 생각을 하게 됐다. 가슴이 아팠다.
▷문귀례 :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데 4·3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한 진상규명과 함께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이 이뤄지고 4·3의 올바른 이름을 찾았으면 좋겠다.
<정리=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학부모 독서동아리 ‘NJ북클럽’
2015년부터 시작한 NJ북클럽은 남주고 학부모와 교직원 등 12명 내외로 한 달에 한 번 책을 통해 소통하고 공감하는 독서 모임이다. 다양한 장르의 책 읽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줌을 통한 모임을 할 만큼 열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