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새삼 '농업'을 화두로 삼지 않을 수 없다. 농업의 주체는 농민이다. 절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떠올리게 된다. 농자는 천하의 근본이라는 얘기다. 그렇다. 농업은 삶의 근본이며 백성을 먹여 살리는 국가의 근본이다. 이처럼 중요한 농자가 요즘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가. 한마디로 농자다운 대접을 받기는 커녕 푸대접을 받기 일쑤다. 이런 실정이니 농자는 온갖 서러움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다.
알다시피 제주 1차산업의 비중은 그 어느 지역보다 높은 편이다. 2020년 기준 1차산업이 제주지역총생산(GR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0%에 이른다. 전국평균(1.9%)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코로나19 사태로 지역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도 1차산업의 비중은 오히려 늘었다. 1차산업이 제주경제를 뒷받침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제주지역 1차산업을 위해 애쓰겠다는 지도자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우선 올해 3월 치른 대통령 선거 때 어떤 공약을 했는지 보면 알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8대 제주공약을 내놓았다. 제주관광청 신설을 비롯 제2공항 조속 착공, 제주 신항만 건설, 제주형 미래산업 집중 육성,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또 쓰레기처리 걱정 없는 섬 구현, 감염병 전문병원 설치, 해녀문화의전당·제주세계지질공원센터 설립 등이다. 제주의 기간사업인 1차산업을 위한 약속은 찾아볼 수 없다.
지난 6월 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6대 핵심공약을 제시했다.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 15분 도시 실현, 생태계서비스지불제 도입, 제주형 생애주기별 돌봄정책 추진, 청년보장제 도입, 상장기업 20개 육성·유치 등이다.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1차산업에 대한 공약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1차산업이 처한 상황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지방선거에서도 이를 타개할 청사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선이나 지방선거나 핵심공약에 1차산업은 없다. 제주도정 최고 책임자도 비전 제시는 커녕 농업을 냉대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오 지사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제주 1차산업 비중 축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기에 김경학 도의회 의장도 "예전부터 1차산업 비중이 10%를 넘는 건 과도하다고 말해 왔다"며 맞장구를 쳤다. 도내 농민들이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조차 못하는 무지의 소치"라고 강력 비판한 이유다.
오늘날 농업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샌드백 신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시장 개방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그렇다고 이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또 물가가 오르면 수입 농산물을 마구 풀어 농민들을 울린다. 농사짓는 것도 녹록지 않다. 농촌의 고령화로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지는 등 농가의 사정이 말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1차산업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도 모자랄 판에 홀대하고 외면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김병준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