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넘어 쓴 두 번째 학사모… "또 다른 20년 살 것"

여든 넘어 쓴 두 번째 학사모… "또 다른 20년 살 것"
제주한라대 관광일본어과 졸업 권무일 씨
소설가로 이름 알렸지만 새로운 배움 도전
연구하며 느낀 언어적인 한계에 대학 입학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 과정 연구할 것"
  • 입력 : 2023. 02.15(수) 16:31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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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한라대 관광일본어과 2년 과정을 마치고 15일 졸업한 권무일 씨. 김지은기자

[한라일보] 갑자기 만남이 이뤄진 지난 7일, 그는 어김없이 도서관에 있었다. 도서관을 뒤져 찾아내 읽고 있다는 문헌 관련 자료가 한 가방은 돼 보였다. 지난 2년간 그를 지켜본 제주한라대학교 국제관광호텔학부 관광일본어과 학과장 정예실 교수는 "도내 도서관을 학교 드나들 듯 다니신다"고 했다. 이미 80을 넘긴 나이에도 그는 끊임없이 읽고 연구하고 써 내려가고 있다. 소설가 권무일(82) 씨의 이야기다.

80세에 들어간 대학… 입학부터 화제

알 만한 사람은 안다. 그는 역사소설 '의녀 김만덕', '말, 헌마공신 김만일과 말 이야기', 중국답사기 '제주표류인 이방익의 길을 따라가다' 등을 펴낸 작가다. 그런 그가 오늘(15일) 열린 제주한라대 학위수여식에서 두 번째 학사모를 썼다. 여든이 되던 해에 입학한 관광일본어과에서 2년의 과정을 마쳤다.

그의 대학생활은 시작부터 주목받았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행정대학원까지 졸업한 그가 늦은 나이에 다시 전문대에 들어간다는 것만으로 화젯거리였다. 일본 동경신문도 '78세 한국 대학생이 일본어 배운다'라는 제목으로 대문짝만하게 그의 이야기를 실었다.

맨 기초부터 시작한 공부는 쉬울 리 없었다. 우리말로 치면 '가나다'와 같이 일본어의 글자인 '가타가나', '히라가나'도 몰랐던 그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 배워야 했다. "제일 답답했던 게 일본어를 모르니까 글이 있어도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제주와 한국의 역사를 연구하며 느꼈던 언어적 한계가 또 다른 배움의 계기가 된 셈이다.

"제주 역사, 그중에서도 탐라국 시대를 중심으로 공부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 급한 것이 생겼지요.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준비 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19세기말, 구한말 시대에 일본과 불평등 조약을 맺으면서 한국, 특히 제주도가 상당히 피해를 봤습니다. 한국의 땅이 빼앗기기 전에 바다를 뺏기면서 근해 어족자원이 황폐화됐지요. 물론 그 과정을 연구한 사람이 있지만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제주와 한국엔 기록이 거의 없으니 관변문서를 중심으로 연구해 왔지요. 저는 그 사정을 일본 책과 문서 등에서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권무일 씨가 지난 2년간 자신을 가르친 제주한라대학교 국제관광호텔학부 관광일본어과 정예실 교수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김지은기자

"인생 사명이자 목표, 공부하며 글 마무리짓는 것"

대학에 들어간 이유부터 여느 학생과 달랐지만 그는 '튀지 않았다'. 손자뻘 되는 같은 학번 학생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고, 함께 엠티를 가고 뒷정리도 도맡았다. 2년 내내 정말 '대학생'처럼 지냈다. 정예실 교수는 그를 '존경하는 제자'라며 "학교 수업 한 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 공부하는 모범생이었다. 교실 맨 앞에 앉아 돋보기를 번갈아 보며 공부하는 모습에 절로 학습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 소감을 묻는 질문에 농담 섞인 말로 "길지도 않은 마지막 인생에서 2년이나 손해를 본 것 같다"고 웃었다. "그동안 언어 공부를 하느라 연구 활동을 거의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언어 공부를 하다 보니 창의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랬습니다. 그럼 2년 더 연구하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그가 나이를 기준 삼지 않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부하면서 쓰는 글을 마무리짓는 것, 나에겐 그것 밖에 없습니다. 몇 살까지 하겠다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지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을 달성하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이자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삶은 어떤 시기마다 전환점을 제대로 관통하듯 전혀 다르게 바뀌어 왔다. 첫 번째 대학 졸업 이후 30여 년간 대기업 건설사에서 일하며 임원까지 지냈지만 일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다 큰 실패를 맛봤다. 지난 2004년, 살길을 찾아 내려온 제주에선 제주를 깊이 들여다보고 연구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됐다.

그는 "이번에 학교를 마치며 많은 생각을 했다"면서 "일본어라는 새로운 공부를 다시 시작했듯이 앞으로의 20년은 제주에서의 지난 20년과는 또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진 주로 역사소설을 썼지만 다큐소설을 준비하고 있다"거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만의 장르의 글을 쓰겠다"는 그의 말이 이러한 다짐의 연장선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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