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의 문화광장] '관성의 레일' 위에 오른 제주건축문화

[양건의 문화광장] '관성의 레일' 위에 오른 제주건축문화
  • 입력 : 2023. 02.21(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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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해마다 2월은 각 대학의 졸업 시즌이다. 웃음소리가 가득한 졸업생들의 모습에서 지역문화의 거점으로서 대학의 역할과 사명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는 제주 미술계와 건축계에서 더욱 확연하게 나타난다.

1973년 제주대학교 사범대학에 미술교육과가 개설된 이후, 50여 년 동안 배출된 졸업생들은 전업 작가 혹은 선생님으로 제주 사회 곳곳에 흩어져 제주 미술계의 근간을 이룬다. 그들은 중앙화단과 연계하고 오키나와 등 해외의 미술계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굵직한 사업들을 전개한다. 이렇듯 제주 미술계가 긍정적인 문화적 관성의 레일을 구축하는 데는 지역대학의 역할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구성원이 다층화되고 개인적 이기심이 우선시되는 사회 변화로 인해 순수의 시대는 와해되고, 레일 위 관성의 힘은 소멸돼 좀처럼 해법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왔다. 다행히 최근 국내 미술시장은 장밋빛 전망을 내세우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미술계가 제주 문화예술의 맹주로서 지위를 다시 회복하리라 기대한다.

반면, 건축계는 어떠한가? 대학과 지역문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1993년에 제주대학교 건축공학과가 개설됐으니 미술계와 건축계의 문화 나이는 20년 차이라 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 지난 30년간 제주건축계의 움직임은 미술계의 데자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창기에 문화로서 건축의 상황은 미술보다도 더욱 암울했다. 건축문화의 소식이 경제면에서 다뤄지고, 제주미전 건축부문에 출품작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대학에 건축 관련 학과가 만들어져 10여 년이 흘러, 2005년 '제주건축문화축제'가 시작된다. 이는 제주에서 건축이 문화의 지위를 얻은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으며, 이제 15년이 흘러 관성의 레일에 올랐다.

반면 건축계가 성장할수록 제주의 한정된 시장에서는 생존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된다. 이런 상황 역시 미술계의 데자뷔라 할 수 있다. 건축계는 이러한 위기의 상황을 빗대어 '참게 수조론'이라 희화화해왔다. 닫힌 수조 안의 참게들은 사료가 부족하면 서로의 먹이가 된다는 것이다. 참게가 생존하는 해법은 수조 벽을 깨어 탈출하거나 사료 공급이 되는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찾는 일이다. 이처럼 외부 세계와의 교류는 섬이라는 닫힌 한계에 놓인 생존의 문제이고, 그 교류의 출발은 문화에서 시작된다. 그리하여 2016년 '제주 국제 건축포럼'이 출범된다. 지난 6·7세기에 탐라의 선조들이 개척한 '동아시아 해양 실크로드'의 무역선에 제주건축을 싣는 것이다. 이미 세 번의 포럼을 거치며 '제주 국제 건축포럼'은 건축문화의 한 단면으로서 관성의 레일에 올려져 있다.

지역에 대학의 관련 학과가 설립돼 전문 인력이 배출되고, 사회의 저변이 형성되고 문화 행위가 축적돼 관성을 이루는 일련의 과정은 데자뷔라 할 만큼 유사하다. 이제 겨우 레일 위에 오른 제주 건축문화가 관성의 힘을 잃지 않도록 건축계가 합심해 혜안을 찾을 때이다.<양건 건축학박사, 가우건축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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