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현성 이설 600주년/ 과거와 미래를 잇다] (2)성산읍 고성리 옛 정의현성 보존·활용 방안

[정의현성 이설 600주년/ 과거와 미래를 잇다] (2)성산읍 고성리 옛 정의현성 보존·활용 방안
성체 소멸 전 체계적 발굴조사·사유지 매입·복원 시급
  • 입력 : 2023. 05.16(화) 00:00
  • 백금탁 기자 haru@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옛 정의현성 있었던 마을 의미 ‘고성’ 지명 유래
LH주택단지 내 ‘향토유형유산’ 빼면 방치 수준
역사적 기록·관련 자료 부족… 연구·관심 미온




[한라일보] 현재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에 있는 정의현성은 원래 인근 성산읍 고성리(古城里)에 위치해 있었다. 고성리의 지명이 '옛 성이 있었던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해안과 불과 1㎞가량 떨어져 있던 정의현성이 잦은 왜구의 침입과 행정구역상 접근 편의성 등의 이유로 성읍마을로 이설됐다. 이후 남은 성곽과 주변은 지난 6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됐다. 2021년 '향토유형유산'으로 지정됐으나 기초조사와 연구조차도 미미한 실정이다. 이에 복원을 통한 체계적인 보전 방안과 성터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역사·관광자원으로의 활용방안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다.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소재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개발한 주택단지 내에 있는 옛 정의현성 모습. 축성 당시 성곽 원형과 조선 초기 성곽 축조방식을 확인할 수 있어 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하지만 사실상 오랜 기간 방치되면서 훼손이 심화되고 있어 발굴조사 및 원형 복원, 활용방안에 대한 관심이 시급하다. 강희만기자



▶외면 받는 제주성곽사 규명 유적 옛 정의현성=지난 5월 9일 성산읍 고성리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개발한 주택단지에서 마주한 옛 정의현성은 성곽 기단 부분을 드러낸 채 주택단지 내 아파트와 어린이 놀이터 사이 낮은 구릉지대에 놓여 있었다. 작은 안내표지판 2곳이 이곳이 600년전 정의현의 첫 읍성이 있던 곳임을 알리는 게 전부였다. '古 정의현성'이라는 안내판에 기록된 내용이다.

"본 유적은 제주의 3성중 하나인 정의현성의 초기 축조 성곽유적이다. 제주 동부지역 행정 및 방어를 맡았던 곳으로 '조선왕조실록' 태종 16년(1416년) 5월 기사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이후 성내 우물이 없어 식수가 부족하고, 바다에 가까워 왜구 침입에 대한 대비가 어렵다는 이유로 '조선왕조실록' 세종 4년(1422년) 12월 기사에 진사리(현재 성읍리)로 옮겨쌓았다는 기록이 있어 약 7년간 사용 후 폐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 성곽축조방식이 잘 나타나는 성곽으로 지표층을 일부 굴착하여 정리하고 다져 시초를 만들었다. 체성부는 내·외벽에 기단석을 허튼층쌓기로 놓고, 사이에 자연석을 채워 쌓아올렸으며, 체성 내·외벽은 빈틈없이 잔돌을 끼워 마감하였다. 2단으로 구획된 등성시설을 설치한 모습이나, 상부구조는 가괴로 알아 볼 수 없다."

제주도 향토유형유산으로 지정된 이 곳 성곽의 규모는 길이 약 140m, 높이 1~2m, 너비 2.2~4.5m 규모다. 재료는 제주 현무암. 제주특별자치도는 최근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축성 당시 성곽의 원형과 조선 초기 성곽 축조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등 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고 판단해 이곳을 '향토유형유산'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일반 주택과 밭에 연결된 성곽 끝 지점은 사람들이 쉽게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낮은 데다 무너진 지 오래돼 방치된 모습이다. 생활쓰레기는 물론 소라껍질 등이 그 위로 버려져 있는 것도 목격됐다.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의 한 관계자는 "성곽 관련은 유산본부에서 관리하고 나머지 주변은 LH제주본부에서 담당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함께 무너진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복원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제주역사문화재돌봄센터가 성곽 내부에 대한 정화활동도 주기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나마 향토유형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는 주택 단지 내 성곽 부분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인근 주변 마을길과 주택 내부 등을 확인한 결과, 과수원과 주택 뒤편에 군데군데 산재해 있는 성터는 일부 확인할 수 있었으나, 성곽의 일부가 밭담으로 쓰이는가 하면 대나무숲 등에 가려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개발로 인해 10여 필지로 성터가 나눠져 산재해 있어 전체적인 실체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웠다.

김대헌(55·서귀포시 동홍동)씨는 "성산읍에서 태어났고, 성곽 주변에 어머니집과 과수원이 있어 자주 이곳을 찾는다"며 "저희 어머니(현금화·82)의 집 뒤편 대나무밭 주변에 성담(옛 정의현성 일부)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들어 이 주변이 옛 정의현성 터임을 짐작하고 있다"고 했다.



▶역사적·학술적 조명… 보전·활용방안 찾기 시급=2023년은 옛 정의현성이 축조(1416년)된지 606년, 성읍민속마을로 이설되며 현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는 600년이 되는 해다.

옛 정의현성이 각종 개발로 산재 된 데다, 그 원형을 잃고 있어 이에 대한 보전방안이 요구된다. 사진은 성담 일부가 남아 있는 주택 뒤편의 대나무숲 전경.

때문에 현재 고성리에 남아 있는 옛 정의현성에 대한 존재감은 일부 고령층 주민과 관련분야 학자들 사이에만 존재하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문화재 조사는 물론 역사유적 조사에 대한 관련 분야도 미약하다. 일부 지구에 대한 발굴조사 보고서가 간행됐을 뿐 제대로 된 학술적 결과물은 극히 드물다. 본보가 2016년 7월 21일자 사회면 '옛 정의현성에 주택건설이라니…' 라는 기사를 통해 중요한 역사유적으로 사업부지 재검토 및 문화재 지정 등 보존조치의 필요성을 제시하며 그 실체가 도민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제주도가 의뢰해 제주고고학연구소가 조사한 '고정의현성 복원 및 활용방안 수립 용역' 보고서가 2017년 나와 옛 정의현성에 대한 기초조사가 세부적으로 이뤄졌다. 이 보고서에서도 남아있는 성체와 조선시대 정의현의 관아지구로 기능하며 자리 잡았던 역사적 실체로서의 학술적 조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문화재(향토유산 등)로서의 지정 가능성을 제기했다. 주변지역의 진성과 봉수, 연대, 환해장성 등의 문화유산과 연계한 관광자원화 방안에 대한 의견도 제시했다.

이에 앞서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전인 2004년, 남제주군과 제주문화예술재단 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고정의현성-비지정 문화재 학술조사 보고'에 따르면 정의현성 이설과 관련한 고성리 주민이 제보한 설화가 수록돼 있다. 그 내용은 고성리와 멀지 않은 성산포에 '용당'이라고 불리는 깊은 바다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커다란 용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용이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고, 그 이유는 고정의현성 성문이 열고 닫힐 때마다 북을 두드려 그 소리에 잠을 깨웠고, 잠이 깬 용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고 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괴로움에 벗어날 방법으로 북소리가 들리지 않은 성읍으로 성을 옮기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옛 정의현성에 대한 풍부한 역사적 유형·무형 자원을 체계적으로 발굴·보전하고 이를 토대로 역사·문화·관광·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이와 함께 성체가 소멸되기 전에 현재 사유지에 있는 성곽 부분에 대한 발굴조사 및 토지 매입 등이 필요하다. 옛 정의현성은 총 길이 1450m, 이 가운데 원형이 남아 있는 구간은 870m, 유실된 곳은 430m, 변형된 구간은 150m로 추정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65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