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이대로 좋은가

[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이대로 좋은가
  • 입력 : 2023. 06.07(수)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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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집을 고쳤다. 골격을 뺀 모두를 바꿨다. 긴 팬데믹으로 오래된 계획이 더 지체됐다. 한달살이 임시거처를 가까이 마련하고 불편한 기거를 시작한다. 값 주고 쓸만한 것은 중고 시장에 팔고, 버릴 것 없이 나눔을 하고 나니 살림이 간결해졌다. 그래도 남은 것은 임시 보관으로 쑤셔 넣었다. 공사별로 견적을 받고 일정 짜고 시공을 진행하며 마지막 정리까지 지켜본 후 잔손질하고 입주하는 데에 꼬박 한 달을 쓴다.

벽지는 다시 반짝인다. 창호는 튼튼히 자리 잡고 침실을 정남향으로 옮기니 아침이 한결 환하다. 축복 같은 빛이다. 등을 바꾸니 밤이 더욱 아늑해졌다. 스며듦이 자연스러운 곳엔 반투명 유리를 끼우니 살짝 빛이 통하는 가림막이 생겼다. 블라인드는 연한 그늘을 만들어 시야가 편안하다. 특별히, 나의 고양이는 전용 문을 얻었다. 베란다 반을 나눠 문을 달고 작은 화분들을 모아 놓기로 한다. 오롯이 나의 꽃밭이다. 손길 둔 생명은 가릴 것 없이 사랑이 의무이니 마음을 다해 보살필 생각이다. 바꾸니 좋다. 비교적 그린대로 됐다. 완벽하진 않지만, 꼭 좋을 순 없으니 그나마도 다행이다.

한편, 나라 걱정이 많아졌다. 일 년 전 대통령 집무실부터 옮기며 전체 리모델링 한 새 정부의 이정표는 이대로 좋은가. 이상폭염과 폭우, 미세먼지 등 기후 위기에의 대응은 이대로 좋은가. 쌀은 천덕꾸러기로 내동댕이치고 혼선을 불러오는 농정은 이대로 좋은가. 전세 사기와 코인과 주가의 조작 등은 이대로 좋은가. 실업과 가난으로 무간지옥이 된 이들의 고독사는 이대로 좋은가. 위태로운 무역수지는 덮고 노조만 때려잡으면 경제는 이대로 좋은가. 육아가 무서운 저출산의 고리와 교육정책은 이대로 좋은가. 풍토병이 된 코로나와 의료행정은 이대로 좋은가. 동맹에 도청당하고 눈 뜨고 코 베이는 외교는 이대로 좋은가. 매번 말 바꾸며 용어 사용의 차이라 하는 말장난은 이대로 좋은가. 사죄 없는 전범국의 간계와 후안무치에 당하는 한국 정부의 뻘짓은 이대로 좋은가. 흔들림 없는 반대와 걱정에도 결국은 방류돼 바다를 떠돌아다닐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는 이대로 좋은가. '공포가 과학을 집어삼켰다'며 외부의 권위를 불러와 내부 불안을 잠재우기만 하면 이대로 좋은가. 수입 농수산물의 검역 주권과 사후대처계획은 이대로 좋은가. 지지율 하락에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은 이대로 좋은가. 천박한 욕심에 사나워지고 냉철한 판단에는 무뎌진 혼돈의 나라, 이대로 좋은가.

새벽은 서늘하고 볕은 뜨겁다. 날씨는 봄이다가 여름이다가 봄날이다. 나들이에 만난 메밀밭은 하얗게 꽃밭이다. 꿀벌들이 날아들 만도 한데 보이지 않는다. 잎마다 벌레 든 구멍 숭숭해도 잘 자라나서 메밀을 거두게 되는 걸까. 간절함이 깊어진다. 뭐라도 심어야겠다. 이미 늦었을지 모르나 심지 않고 거둘 수 없으니 기도 같은 씨앗 한 톨, 가슴에도 심는다.<김문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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