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요즘 자녀 키우기가 만만치 않다. 과도한 사교육비와 미취업 자녀에게 들어가는 비용, 결혼 비용 등 자녀에게 들어가는 돈이 끊이지 않아 '자녀 리스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부부 합산 1억 연봉 가정에서 연간 사교육비가 3360만원 즉 연 수입 중 사교육비 비율이 33.6%라는 통계가 있다. 반면 2019년 기준 공적 사적 연금 확보 비율은 17.4%밖에 안 된다. 자녀 교육비 등 자녀를 위한 돈은 계속 나가는데 정작 자신의 노후 대비 연금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1980년대만 해도 부모는 자식 덕을 톡톡히 봤다. 노후를 자식 도움으로 해결하는 부모가 72%나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식 도움으로 노후를 해결하는 부모는 얼마 안 된다. 참고로 미국은 0.7%다. 선진국 어느 나라도 자식이 부모의 주생활비를 지원해 주지 않는다. 지금은 100세 시대로 노부모 부양 기간만 해도 최소 25~30년이다.
저성장 시대 점차 이직과 은퇴가 빨라지는 이 시기에, 부모는 한정된 자금을 슬기롭게 써야 한다. 자녀의 사교육비에, 대학 등록금에, 사업 자금에, 결혼 비용에, 주택 마련 비용에 아무 생각 없이 대주다 보면, 막상 자신의 노후자금은 부족해지게 된다. 달랑 집 한 채를 빼고 나면 가진 게 별거 없는, 그러한 부모의 노후는 누가 책임져야 하나? 단언하자면 자녀가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한정된 자금을 자녀 사교육비 등 자녀 지원에 쓰는 건 아깝지 않고, 노후자금으로 연금 드는 데엔 무관심한 건 아닌지 따져보아야 한다.
교육부 발표(2019)에 따르면, 전체 대졸자 순수 취업률은 50%대에 불과하다. 경희대 신동균 교수 연구에 의하면 남성이 45세까지 주직장에서 계속 근무할 확률은 20% 초반이다. 좋은 대학만 가면 스펙만 쌓으면 저절로 취업 되고, 취업만 하면 은퇴할 때까지 쭉 안정되게 살아가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실직은 누구나 겪을 수 있고, 자녀가 이를 담대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다 큰 자식이 부모에게 얹혀사는 걸 캥거루족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에 캥거루족이 314만 명이나 있다. '좋은 학벌'보다 더 중요한 건, 자녀가 스스로 '물고기 잡는 법'을 터득해 나가도록 어릴 때부터 '자립' 습관을 키워주는 일이다.
자녀 자립은 결국 부모 하기 나름이다. 자녀가 자기 계발을 스스로 할 수 있는지, 사회성과 인성에 대해 성숙하게 성찰할 수 있는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소신 있게 교육하기 나름이다. 부모의 편안한 노후는 자녀의 자립 여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식에게 다 내어주고 은퇴한 후에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일해야 하는 부모, 힘들게 살아가는 부모가 있다면, 안타깝지만 자신의 노후 대비 없이 자녀 교육과 지원에 '헌신'한 부모 자신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다. 늙어서 자녀에게 손 벌리지 않는 부모가 진짜 현명한 부모임을 잊어선 안 된다. <김용성 시인·번역가·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