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의 한라시론] 오래된 이 속담의 본뜻

[김양훈의 한라시론] 오래된 이 속담의 본뜻
  • 입력 : 2024. 02.29(목)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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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날이 샜다고 울어야 할 수탉이 제구실을 못 하고 대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뜻으로,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을 제쳐 놓고 떠들고 간섭하면 집안일이 잘 안된다는 말'이라고 알려준다.

얼핏 여성비하로 들린다. 오늘날 이 말을 무심코 입 밖에 냈다가는 뭇 여성들이 우르르 몰려와 멍석말이하고 몰매를 칠는지도 모른다. 명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이런 매타작에 견뎌낼 장사는 없으니 하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이 속담은 뭇매를 당해야 하는 남존여비 악담에 불과할까?

오래된 이 속담은 중국에서 건너온 빈계사신(牝鷄司晨)이라는 사자성어가 원조다. '암탉(牝鷄)이 울어 새벽을 알린다'라는 뜻이다. 사자성어에는 반드시 그것이 생겨난 유래와 교훈이 숨어 있다. 새벽에 수탉이 행하여야 할 그 무슨 역할을 암탉이 대신 한다는 뜻이라 하니, 본래 그 수탉이 행하여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우선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부터 살펴보자.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30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은(殷)나라 주(紂) 임금이 애첩 달기(己)의 말만 듣고 국정을 어지럽혔다. 이를 두고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길, 암탉은 아침에 울지 않는데 암탉이 울면 어느 집안이라도 망하느니라". 이는 서경(書經)의 주서(周書) 목서편(牧誓篇)에 나오는 데, 400여 년이 지난 후 사마천은 이를 주본기(周本紀)에 옮겨 실었다. 공자의 편찬에 이어 사마천 역시 이 말을 다시 전하고자 했으면 그 뜻이 만만치 않음이렷다.

애첩 달기는 누구인가? 얼굴이 반반했던 그녀는 화술에 능란하고 방중술이 극에 달하여 주왕의 애를 태우는 데 능숙했다. 그리하여 달기는 임금을 타락시킬 뿐 아니라 사사로이 나랏일에 참견하더니 마침내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다.

수탉은 동이 터올 무렵이면 그중에서도 우두머리가 맨 먼저 홰에 올라 울기 시작한다. 이러한 수탉의 본능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가. 지도자 수탉의 역할은 닭의 무리를 이끌고 보호하는 것이다. 그가 거느리는 암탉과 병아리들에게 모이를 먼저 먹게 하고 자신은 머리를 꼿꼿이 세워 사방을 경계한다. 한편 목청이 찢어지라 울어대는 것은 자신의 영토를 사방에 알리려는 것이다. 믿기 어렵지만, 닭은 밀림을 주름잡던 공룡의 후예다. 그래서인가 수탉 울음소리에는 쥐라기 밀림에 퍼지던 야수의 포효가 남아있는 듯하다.

이처럼 빈계사신(牝鷄司晨)은 수탉과 암탉의 역할이 뒤바뀌어 생겨나는 후과를 지적하는 것이다. 곧 여성비하가 본뜻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바 본분을 다하라는 가르침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이 말의 임자에게 함부로 돌팔매질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귀신마저도 깔보는 구미호의 화신, 박절(迫切)한 달기라면 사정은 다르다. 시절이 어지럽고 엄혹해서 하는 말인데, 속담은 가려서 쓰자. 말 한마디 글 한 줄 삐끗하면 문자옥(文字獄)의 낭패를 당하리라.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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